정부는 ‘건강보험료(건보료) 개선안 백지화 논란’이 커지자 올해 상반기 안에 저소득층 보험료 경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그런데 이는 건보료 지출을 그대로 둔 채, 수입만 일방적으로 줄이는 내용이어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득·재산이 많은데도 기존 건강보험제도의 허점을 틈타 건보료를 적게 내온 일부 고소득층의 ‘무임승차’ 행태를 바로잡을 대책이 빠져 있어,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시비를 줄이지 못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관련기사 3면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취약계층의 보험료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복지부가 검토하고 있는 건보료 경감 대상은 전체 지역가입자(758만9000가구)의 약 78%를 차지하는 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지역가입자(599만6000가구)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구분하는데, 지역가입자는 다시 연간 소득 500만원을 기준으로 ‘초과 세대’와 ‘이하 세대’로 나뉜다.
연소득 500만원을 넘는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의 많고 적음, 자동차의 종류에 따라 보험료를 낸다. 반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500만원 이하의 지역가입자는 재산·자동차와 ‘평가소득’ 등 세 요소에 따라 보험료를 낸다. 평가소득이란 성별이나 연령, 재산, 자동차를 점수화해 실제로는 없는 소득을 추정해 보험료를 매기는 방식을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재산과 자동차에 보험료가 두번 매겨지는 꼴이라,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한테 이중부과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복지부는 “평가소득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먼저 성·연령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항목을 없애는 등 다양한 경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가소득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해온 자동차와 관련해서도 ‘생계형 자동차’는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복지부의 ‘저소득층 보험료 경감 방안’에 건보료 추가 확보 방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지난해 9월에 낸 ‘2013년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2013년 전체 보험료 수입이 39조319억원인데 이 가운데 지역보험료가 7조1568억원이었다. 지역보험료 가운데 평가소득의 성·연령과 자동차 요소 덕분에 걷은 보험료는 각각 9000억원, 5000억원에 이른다. 평가소득과 별도로 자동차에 부과하는 보험료도 4000억원 남짓이다. 성·연령 항목을 없애고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도 내리면, 적어도 1조원 이상의 건보료 수입 감소가 빚어진다는 뜻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1일 “건강보험제도를 새롭게 설계할 때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수입을 일방적으로 줄이면 건보 재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건강보험 재정에 12조원 남짓의 누적 흑자가 쌓여 있지만, 이는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함께 느는 노인진료비의 증가분에 대비한 여유자금”이라며 “당장 건보 재정에 여유가 있다고 이런 식으로 수입·지출의 균형을 깨는 저소득층 보험료 경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1월28일 백지화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기획단)의 개선안과 달리, 이번 저소득층 보험료 경감 방안에는 일부 고소득층의 무임승차 행태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애초 기획단은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및 ‘공정성’ 달성을 목표로 ‘경제적 형편에 따른 보험료 부담’, ‘수입·지출의 균형(재정중립)’, ‘무임승차자 배제’의 3대 원칙을 세웠다. 45만명 안팎의 고소득층 건보료를 올려 600여만명에 이르는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의 개선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김종명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건강보험팀장은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혁하라는 국민적 요구의 핵심은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바로 세우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생색내기식 저소득층 대책으로 건보료 개선안 백지화 논란을 모면하려 하는 것은,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고소득층 45만명의 특혜를 어떻게든 보호하겠다는 태도”라고 짚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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