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2014년 12월30일 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서울 공덕동 서울서부지검을 나와 서울남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17년 기장 출신 미국 로스쿨생
“기장이 외부 방해로 회항했다면
항로변경죄 성립될 수 있을것”
“기장이 외부 방해로 회항했다면
항로변경죄 성립될 수 있을것”
“항로변경죄가 단지 200m 이상 상공의 항공기만 보호하려는 것일까요?”
그동안 두차례 열린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공판에서 그의 변호인들은 문제의 여객기가 지상에서 이동한 사실이 항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해왔다. 항로변경죄는 조 전 부사장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법정 형량이 가장 높다.
2일 오후 열릴 조 전 부사장의 결심공판을 앞두고 항공기 기장 출신으로 미국 인디애나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최인석(44)씨가 “지상의 길은 ‘항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한항공 쪽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그는 1997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17년 동안 조종간을 잡다 ‘항공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최 전 기장은 1일 이메일·전화 인터뷰를 통해 “대한항공 쪽 말대로 항로가 ‘고도 200m 이상의 관제구역’을 의미한다면 상공 200m 이하와 지상에서 항로가 변경돼 발생한 사고를 막을 법규가 없다. 항로의 의미를 해석하려면 입법자의 의도와 이 시대 일반인들의 상식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열린 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들은 “항공기를 돌릴 당시 이동거리는 17~20m에 불과했다. 엔진 시동도 걸리지 않았고, 토잉카(견인차)에 의해 후진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전 기장은 “게이트에서 출발하는 경우 견인차로 이동하지만, 승객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해 탑승하는 ‘리모트’ 출발 항공기는 엔진 시동 뒤 자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견인차에 의한 이동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항공보안법의 ‘불법 방해 행위’는 항공기의 안전운항을 저해할 우려가 있거나 운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항공기의 위치보다는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지상에서의 불법 방해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램프리턴 죄’가 없기 때문에 무죄라는 대한항공 쪽 주장에 대해서도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최 전 기장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항공기 납치를 제외하고 항공기의 방향을 돌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항공산업의 특성상 향후 외국 판결에 인용될 수 있는 사건인데도 항공보안을 강화해야 하는 항공사 오너가 항공보안법을 무력화하는 일에 앞장섰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만 최 전 기장은 “해당 항공기의 기장이 ‘외부의 방해’를 받고 게이트로 돌아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항로변경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전 기장은 “항공기 램프리턴 시 ‘외부의 방해 없이 기장 스스로 안전하다는 판단’을 하고 돌아간 것이라고 재판부가 본다면, ‘정상운항’의 범위로 간주해 항로변경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조 전 부사장 등의 공소장에서 “(땅콩 회항 사건이 일어난) 제이에프케이 공항은 주기장이 좁아 약 10m 정도만 ‘푸시백’을 하더라도 다른 항공기의 통행에 장애를 주는 구조다. 항공기가 푸시백 도중 사전 통제 없이 멈추면 다른 항공기와 충돌하는 등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상황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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