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촛불재판’ 유죄판결 주문 논란…“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
퇴임 앞두고 언론 인터뷰
“후회한다”던 발언 뒤집어
퇴임 앞두고 언론 인터뷰
“후회한다”던 발언 뒤집어
“재판 신뢰에 손상을 초래해 후회와 자책을 금할 수 없다.”(2009년 5월13일 법원 내부게시판)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하겠다.”(2015년 2월3일 언론 인터뷰)
오는 17일 임기 6년을 마치고 퇴임하는 신영철(61) 대법관은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6~7년 전 ‘촛불재판’ 개입 사건과 관련해 전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신 대법관은 법원장이 판사들의 재판 독립성을 크게 침해하고, 판사 수백명이 이에 반발해 퇴진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서게 만든 사법사상 초유의 사건 주인공이다. 그는 당시 궁지에 몰리자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법부 안팎의 거센 사퇴 요구에도 임기를 채우더니, 이젠 자신의 사과 발언까지 뒤집고 나선 것이다.
■ “후회와 자책”→“지금도 그때처럼”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던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전국을 흔들었다. 집회 참가자 1400여명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기소됐다. 신 법원장과 허만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집중 배당했고 줄줄이 유죄가 선고됐다. 단독재판부 판사들이 몰아주기 배당에 문제 제기를 하려 하자 신 법원장은 “균형있게 배당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박재영 판사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관련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들에서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려보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신 법원장은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대내외비’ 전자우편을 보내 대법원장 뜻을 전하는 것처럼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달라”고 했다. 서둘러 유죄 판결을 내리라는 주문이었다. 신 법원장은 이후에도 몇차례 ‘대내외비’ 전자우편을 보냈다.
이 일은 이듬해 2월 그가 대법관으로 임명되자 언론에 알려졌다. 헌법에 보장된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전국 26개 고등·지방법원 가운데 17개 법원에서 판사 500여명이 판사회의를 열어 신 대법관의 행위는 “재판권 독립 침해”라고 결의했다. 후배 판사들로부터 공식적인 불신임을 받은 신 대법관은 법원 내부게시판에 “도를 넘어 법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손상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후회와 자책을 금할 수 없다. 제 부덕과 어리석음으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린 상처가 치유됐으면 한다”면서도 사퇴 요구는 거부했다. 출퇴근길에는 기자들을 피해다니기도 했다.
집시법 위헌 제청을 한 박재영 판사는 “내 생각이 정권의 방향과 달라 판사로서 부담을 느낀다”며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났다. 법원 수뇌부로부터 촛불재판 사건을 집중 배당받고 참가자들에게 줄줄이 중형을 선고한 조한창 부장판사는 2012년 고법 부장판사(차관급)로 승진했고, 최근 인사에서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로 발탁됐다.
어느새 6년 임기를 채우고 퇴임을 앞둔 신 대법관은 3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촛불재판을 신속 처리해야 하는 소신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낮은 벌금형을 받는 정도라면 유죄라도 빨리 재판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시 촛불집회 참가자 처벌에 대응했던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사태의 핵심은 자신의 판단대로 일선 판사들이 따르도록 했다는 것”이라며 신 대법관이 본질을 가리는 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벌금형이 낮아 빨리빨리 재판을 마무리짓는 게 낫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 “워런 대법원장 닮고 싶다” 했는데…
신 대법관은 2009년 2월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얼 워런 전 대법원장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워런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한 ‘미란다원칙’을 확립하고 차별적인 인종분리 교육에 위헌 결정을 하는 등 약자의 권리를 신장한 대법관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그분의 성향이 아니라 (해당 사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법적극주의’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신 대법관이 6년간 참여한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개인의 권리보호보다 국가권력·기득권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2010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 강요를 다룬 ‘강의석군 사건’에서 종교교육이 위법이 아니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2012년 전교조 교사들의 1차 시국선언 사건에서는 유죄라는 다수의견에 섰고, 과거사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권리를 제한하는 여러 판결에서 다수의견에 동참했다.
한편으로는 주심판사로서 부부 강간죄 유죄 판결을 이끌었고, 자살한 군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판결 등에서는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다수의견 쪽에 섰다. 법원 내에서는 신 대법관이 전향적인 판결을 일부 남긴 것에 대해 ‘촛불재판 논란’을 의식한 결과 아니겠냐는 시각도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신영철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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