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사회연 ‘복지 모형’ 보고서
‘적게 걷어 적게 분배하는’ 저부담·저복지의 재정구조를 개선하려면 세금부담을 높이는 일 못지않게 ‘조세체계의 공정성’, ‘재정지출의 효율화’가 중요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 감면이나 고소득층이 누리는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고, 토건·경제사업·국방비 등에 지나치게 집중된 재정지출 구조만 손봐도 복지재정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복지 확대의 1차적 수단을 ‘증세’에서 찾는 최근 정치권의 ‘증세없는 복지’ 논의와 다소 결이 다른 접근법이다.
5일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최근에 낸 <한국형 복지모형 구축>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저부담·저복지 상태는 근본적으로 낮은 조세부담률에서 비롯된 취약한 사회복지지출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정부가 세금을 적게 걷는데, 걷은 세금을 사회복지 분야가 아닌 곳에 더 많이 쓰고 있다는 뜻이다. ‘저복지’는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저부담·저복지’ 구조는 이렇듯 세수 기반이 취약한데서 출발한다. 한국의 조세체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개인소득세와 부동산세·소비세·사회보장기여금의 비중은 낮은 반면 법인세와 금융자본거래세의 비중은 높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인세의 비중이 높다는 게 특이한데, 이는 극소수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낮은 노동소득분배율,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기업의 법인세 선호 등에서 나타나는 착시현상일 뿐 개별 대기업의 세부담이 높다는 뜻은 아니다. 소득세의 비중이 낮은 건 소득세 최고세율이 낮고 고소득자의 과세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이에 보고서는 “고소득층과 고액자산가, 재벌 대기업에 집중된 세제 혜택으로 인해 조세체계의 공평성이 매우 낮은 상태에 있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고소득층 및 대기업 위주의 감세정책으로 조세체계의 누진성이 더욱 약화됐다”고 짚었다.
조세체계의 불공평 못지않게 복지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한국의 ‘비정상적’인 재정지출구조다. 한국의 재정지출은 토건 및 경제사업에 과도하게 집중돼 사회 분야의 투자가 부진하다. 전반적으로는 공공자원 분배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도로나 철도, 항만, 공항, 지역개발사업 등에 투입되는 재정의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남북 분단을 빌미로 한 과도한 국방비 지출은 다른 부문의 재정지출 여력을 잠식해 복지국가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 연구개발(R&D) 지출은 세계 4위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반면 막상 효율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서는 평가했다.
재정 규모도 크지 않은데, 분배의 효율성이 떨어지니 당연히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넓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는 지속가능한 복지재정의 확보를 위한 필수조건임에도 가족·아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은 대단히 낮다.
보고서는 이처럼 공정하지 않은 조세체계와 효율적이지 못한 재정지출구조를 개선해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세제개편과 재정지출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2010년 우리나라 조세 및 재정지출을 통한 빈곤율 감소 효과는 오이시디 회원국 중 최하위이며, 소득불평등 완화 효과는 칠레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수준이다”며 “보편주의 복지를 통한 빈곤과 소득불평등의 감소,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사회 전체의 생산성 향상과 고용 증대를 낳고 이는 다시 세수 기반의 확충으로 이어져 국가의 재정건전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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