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오른쪽)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 삭제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뒤 “재판 결과는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원 “남북정상대화록 초본은 대통령기록물 아니다”
초본 삭제 혐의 백종천·조명균에 ‘무죄’ 판결
검찰 기소내용엔 “납득하기 어려워” 일침
초본 삭제 혐의 백종천·조명균에 ‘무죄’ 판결
검찰 기소내용엔 “납득하기 어려워” 일침
‘사초 폐기’ 논란을 빚어온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 삭제는 정당한 조처였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통령이 재검토와 수정을 지시한 이상,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취지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유출과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새누리당이 이른바 ‘사초 폐기’ 논란으로 역공에 나섰지만, 이는 결국 정략적 공세였다는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또 검찰 역시 정권의 입맛에 맞춘 표적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동근)는 대화록 초본을 삭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로 기소된 조명균(58)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과 백종천(72)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에게 6일 무죄를 선고했다. “최종 단일본을 전제로 작성된 대화록 초본은 대통령기록물로 보기 어렵다”는 게 핵심 이유다.
조 전 비서관과 백 전 실장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을 청와대 전자문서관리 시스템인 ‘이지원’에서 무단 삭제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쪽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사초’를 폐기한 것은 불법행위라며, 결심공판에서 두 사람에게 징역 2년씩을 구형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초본을 보고받은 뒤 재검토와 수정을 지시했기 때문에 최종 완성본이 아닌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은 (대화록 초본이 첨부된 결재·보고 양식인 문서관리카드를) 조 전 비서관에게 반환하면서 내용을 재검토해서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초본이라도 일단 결재권자가 전자서명을 했으면 공식 대통령기록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폐기할 수 없다고 공판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논리가 납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대로라면 재검토하거나 수정해야 해서 등록하기 부적절한 문서들도 즉시 등록·관리해야 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녹음파일을 글로 풀어낸 녹취록 초본은 결국 완성본을 위해 작성되는 것이고, 완성본을 만들고도 초본을 그대로 두면 비밀 유출의 위험도 있어 초본은 폐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는 검찰의 기소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참여정부 쪽 인사들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초본 삭제가 위법하지 않다는 것뿐 아니라, 완성본이 나온 상태에서 초본 삭제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차례로 2개가 작성됐다. 당시 조 비서관은 국정원으로부터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대화 녹취록을 전달받아 대화록 초본을 만들었다. 이어 ‘이지원’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보고’라는 제목으로 초본을 첨부해 대통령에게 결재를 올렸다. 대통령은 이를 결재하면서 “앞으로 해당 분야를 다룰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고 보안을 어떻게 할지도 안보실에서 책임지고 판단해 달라”는 등의 의견을 덧붙였다. 재검토와 수정 지시를 한 것이다. 조 비서관은 초본을 다듬은 완성본을 대통령에게 승인받고, 노 대통령 퇴임 직전인 2008년 1월 그 사본을 국정원에 전달했다. 그 뒤 초본은 ‘이지원’에서 삭제됐다.
초본 삭제 사실은 5년이 지난 뒤 알려졌다. 여야 의원들은 2013년 7월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엔엘엘 포기 발언’ 논란이 다시 불붙었는데, 대화록 내용을 직접 확인하러 간 의원들은 대화록을 찾지 못하고 “대화록이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대화록을 폐기한 이들을 처벌해달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대화록 유출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이 ‘사초 폐기’ 논란을 통해 역공에 나선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당시 부장 김광수)는 2013년 11월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화록 초본을 삭제한 혐의로 조 전 비서관과 백 전 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하명수사로 시작한 무리한 검찰 기소가 무죄로 귀결된 것은 부끄러운 검찰의 자화상을 보여줬다”며 “대통령기록물 유출이라는 잘못을 전 정부에 떠넘긴 새누리당도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노무현재단도 성명을 내고 “상식과 합리에 입각한 당연한 결과이자 정치검찰의 표적수사와 억지 주장에 사법부가 엄중한 경고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선식 이유주현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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