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종신직’ 교수들의 성범죄가 잇따르지만, 정작 이 사건들을 조사하는 전문상담원 대부분은 ‘계약직’이어서 학내 성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강단에 복귀하는 ‘가해 교수’들에 대한 관리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대학 쪽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들고 있어 빈발하는 학내 성범죄에 대한 해결 의지도 의심받고 있다.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석진(54) 교수에 이어 경영대 ㅂ교수의 상습 성추행 의혹까지 불거진 서울대의 경우, 학내 성범죄 조사는 인권센터가 맡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대부분은 계약직이다. 피해자 상담을 맡은 전문위원 4명 가운데 3명이 1년 단위 계약직이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화여대는 정규직과 계약직 1명씩이 학내 성범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연세대, 고려대, 숙명여대도 계약직 상담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울대 관계자는 10일 “전문상담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 피해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계약직 상담원들이 자주 바뀌면서 성범죄 예방 업무의 연속성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가령 가해 교수가 징계를 받은 뒤 6개월이나 1년 동안 수업을 못 하다가 복직했을 때,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전문위원이 바뀌면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했다. 징계를 받은 교수가 갑자기 학교에 나타나 학생들과 마주칠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말 계약기간이 끝나 직장을 옮겨야 하는 서울의 한 여대 성평등상담소 전문연구원도 “이 업무의 가장 힘든 점은 짧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학생을 만나 상담하고 관련 프로그램도 개발해왔다. 학교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인데 학교는 비용 문제만 고민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 성범죄 상담센터 운영 현황을 관리하는 여성가족부도 전문상담원들의 고용 형태는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원준재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 회장은 “성범죄는 학교마다 징계 규정이 다르고 사건을 처리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장기간 사건을 처리하며 대학별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며 업무 연속성을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 대학원생총협의회와, 학부 총학생회를 대행하는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는 11일 ‘서울대 교수 성희롱·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을 꾸리고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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