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중 차량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한 1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영종대교에서 피해자들이 경찰과 소방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고 현장을 벗어나고 있다. 영종대교/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나온 다리 뒤로 10여분간 ‘쿵쿵’
일부 승객 차량 지붕 몸 피하기도
일부 승객 차량 지붕 몸 피하기도
보이지 않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얀 종이 위에 뚝 떨어진 먹물처럼, 짙은 안개 속에서 시커먼 탑차가 갑자기 나타났다. ‘악’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탑차를 들이받는 순간 버스에 타고 있던 이아무개(30)씨 앞좌석 승객들이 영화 장면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좌석에 처박혔다. 멈춰선 차를 뒤에서 들이받고 들이받고 또 들이받았다. 짜부라져 열리지 않는 차문 대신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나왔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렵게 차량 밖으로 나온 승객들은 또다시 안개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차량이 자신들을 덮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33m 높이의 다리 난간 너머로 피할 수도 없었다. 일부 승객들은 차량 지붕 위로 몸을 피하기도 했다. 안개를 뚫고 지나온 다리 뒤쪽으로 쿵,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10여분간 이어졌다. 전쟁터의 포성 같았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화면을 보면, 앞차를 추돌해 멈춘 차량을 뒤에서 온 차량들이 몇 차례고 연속해 추돌한 충격으로 화면이 계속 떨리기도 했다.
11일 오전 9시40~50분 사이에 발생한 106중 추돌 사고 뒤 인천 영종대교 위에는 3차선 도로를 따라 1.3㎞에 달하는 ‘초대형 폐차장’이 만들어졌다. 영종대교 전체 길이 4.4㎞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길이다. 공항버스, 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트레일러 등 온갖 종류의 차들이 한데 엉켰다. 뒤에서 계속 추돌하며 밀어붙인 탓에 일부 차량은 다른 차량 지붕 위로 밀려올라갔다. 추돌한 승용차와 버스의 앞뒤가 한덩어리로 붙은 탓에 사고 수습 과정에서 동시에 이동시키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확한 연쇄 추돌 사고 차량 대수는 이날 밤 9시가 넘어서야 나올 정도였다. 사고 뒤에도 한동안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폐차장이 된 도로에 구급차와 견인차, 소방차 등이 몰려들면서 부상자 이송과 현장 정리에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망자 김아무개(51)씨가 운전하던 승합차에는 김씨의 타이인 아내(36), 이날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아내의 타이인 지인 가족 등 6명이 타고 있었다. 외손자와 두 딸을 데리고 입국한 타이인 여성(58)은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성의 딸(25)은 “이모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며 사고 당시의 끔찍한 장면을 떠올렸다.
박기용 박태우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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