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80년대에 격리 수용돼 낙태와 ‘단종’ 수술을 받은 한센인들에게 국가가 56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재판장 심우용)는 한센인 203명이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수술을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2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인들이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한 데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관절제수술을 받은 171명에게는 3000만원씩,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12명에게는 4000만원씩 총 56억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수술 받은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20명의 청구는 기각했다.
송아무개(68)씨 등은 1948~82년 국립소록도병원, 부산용호병원 등 7개 병원에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한센인 정관절제수술은 1992년까지, 임신중절수술은 1980년대 후반까지 이뤄졌다. 수용 병원은 한센인 부부가 동거하려면 정관절제수술을 받게 했다. 출산을 원하는 한센인은 임신한 지 28주 안에 퇴소해야 했고 재입원은 금지됐다. 재판부는 “국가가 운영한 병원들이 한센인들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서까지 강제로 수술을 했다고 쉽게 인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한센인들이 결혼하기 위해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받는 것을 원하거나 승낙했다고 해서 이를 진정한 동의나 승낙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센인들이 수술을 원했더라도 그것은 배우자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어느 정도는 강요된 것이라는 말이다. 한센인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주거지에서 쫓겨나 한센인 마을과 병원을 찾아갔는데, 이들이 한센병에 대해 얻은 정보도 결국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감안됐다.
한센병은 피부나 호흡기를 통해 나균에 감염되는 전염병이다. 유전병이 아니고 성적 접촉으로 전염되지 않는데도,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은 금기시됐다. 1941년 개발된 치료약이 47년에 국내에도 들어왔지만,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피부 손상이나 사지 마비 증상 때문에 ‘문둥병’이나 ‘나병’으로 불리면서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은 이어졌다.
송씨 등은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국가에 의한 강제 단종·낙태 수술이 이뤄졌다고 인정하자 2011년 10월 소송을 냈다. 앞서 광주고법 민사2부(재판장 서태환)는 지난해 10월 강아무개(79)씨 등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처럼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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