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대박’나 새 직영점 필요
이태원, 가로수길, 연남동… 핫플레이스 많지만
장사의 원형 있는 곳 찾아 광장시장으로
의아해하던 패션업계 젊은이들도
재래시장 활성화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 동참
물물교환·사회적기업과 협업 등에도 열심
껍데기는 가라…“모든 제품에 본질만 남길 터”
오후 5시. 서울 광장시장 골목은 어둡고 한적했다. 아동복 가게 옆은 커튼 가게, 그 옆엔 전기장판 도매점, 그 옆엔 이불가게…. 여성복 판매점 삼양사의 쇼윈도 안엔 ‘반짝이’ 티셔츠들이 한쪽 벽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직물 도소매상들이 몰려 있는 국내 최초의 상설시장이자 최근 맛집으로 뜬 광장시장도 평일 오후의 한적함을 이겨낼 순 없었다. 그 한적한 시장 골목의 한가운데 세련된 통유리로 된 가게가 눈에 띄었다. 거칠게 칠한 페인트 자국과 테이프로 휘감은 박스들이 입구에 놓여 있었다. 개업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흔적들이었다.
백팩 브랜드 ‘로우로우’의 이의현(33) 대표는 마침 박스에서 가방들을 꺼내 분류하는 중이었다. 정리가 다 되어갈 때쯤 곱슬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와 말을 걸었다.
“총각, 장사는 잘돼?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시장이 아주 환해졌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는 이 대표 가게 맞은편에서 여성복을 팔고 있는 사라패션 대표 강종순(79)씨다. 이웃집에 드나들 때마다 장사 노하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서른두 살에 시장에 들어와 옷 가게를 운영하면서 아들들 대학, 장가 다 보냈다”는 강씨는 광장시장만 한 곳이 없다고 했다.
강씨의 노하우를 들을 때마다 이 대표는 광장시장으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한 가게에서 47년을 살아오셨잖아요. 그게 진짜 삶이죠. 경영 컨설턴트나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엔 그런 게 부족했어요.”
이 대표는 2011년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가방 브랜드 로우로우로 ‘대박’을 터뜨렸다.(
▶ 관련 기사: ‘가장 가방다운 가방’…6명 의기투합 “일냈네”) 2013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에 사무실을 겸한 첫 매장을 열었다. 오래지 않아 두 번째 직영점이 필요했다. 구매자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여러 상품을 소량 판매하는 편집숍(다양한 브랜드의 특정 상품을 모아놓은 매장) 납품만으로는 부족했다. 회사가 만든 제품들을 다 소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선 이태원, 가로수길, 연남동 등 이른바 ‘잘 나가는’ 동네들을 추천했다.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 봉제, 섬유가 시작된 곳이 광장시장이고 이곳이 상업의 원형이에요. 본질에 충실한 로우로우 정신에 가장 가까운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시장에서 총각, 이모, 새댁이라고 하면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다른 곳에서 느끼기 어려운 남다른 정서가 시장에는 있어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의 과잉 친절도 마뜩찮았다. “고객들한테 ‘이 제품은 가격이 9만9000원이십니다’라고 극존칭을 쓰잖아요. 그런 문화도 거부감이 들었어요.”
시장에 왔으니 시장의 정을 나누고 싶어 물물교환도 시험중이다. 물물교환은 재화를 주고받던 상업의 본질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바터 마켓(Barter Market)’이라 이름붙였다. 매장 한편에는 이미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는 잘 안 쓰지만 버리지도 못하는 잡화나 디자인 소품들이 있잖아요. 헤어진 애인이 남긴 선물도 돈 대신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선글라스, 향수, 지갑, 미니 스피커, 토이 카메라 등을 기증하고 가방이랑 맞교환하거나 저렴하게 가방을 사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누거나 버리면 제품이 선순환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매장으로 와서 흥정을 잘하시면 됩니다.”
시장에 매장을 연다고 했을 때 의아해했던 이들이 이제는 거꾸로 제안을 해온다. 특히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또래 청년들이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해 쿵짝쿵짝 일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찾아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광장시장은 원래 봉제나 섬유 등의 직물 도매시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주변 상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시장 내 서문 쪽 골목상권이 많이 침체했다고 해요. 이 골목 입구부터 끝까지 신진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프리마켓과 패션쇼를 기획하고 있어요. 또 시장에서 30~40년 장사한 상인들한테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어요. 그분들 모셔놓고 강연쇼도 열어볼 생각이에요.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에 디자인 생기를 불어넣고 싶어요.”
로우로우는 10개국에 가방을 수출한다. 운동화와 모자도 출시했다. 짧은 시간에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지난해는 편집숍에 공급하는 제품 규모를 축소시키고 자체적으로 숨 고르기를 했다. 팀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자주 만들고 신생 기업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내부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로우로우가 가방 만드는 일 다음으로 잘하는 일은 브랜드 디자인이다. 그래서 홍보가 필요한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그들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탰다.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인 <빅이슈> 판매원들이 입는 조끼를 제작하고 배달원을 위한 가방을 만들어 보급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브랜드 디자이너이자 ‘가방장수’인 이씨가 꿈꾸는 다음 계획은 뭘까. 그는 로우로우를 통해 단순한 삶이 주는 소박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신발 사업이 성공하면 다음은 ‘자전거다운 자전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로우로우 운동화를 신고 자전거를 타거나, 모자 쓰고 가방을 메고 걷는 고객들의 모습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운동화 신고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지고 기분이 참 좋아지거든요. 팍팍하게 사는 도시 사람들에게 단순한 삶이 주는 즐거움을 알려드리기 위해 저희가 만드는 모든 제품에는 본질만 남겨놓을 거예요. 그거면 충분해요.”
글 사진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