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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친척들 앞에 설 자신이 초라했을까…‘명절의 비극’

등록 2015-02-22 19:40수정 2015-02-22 22:05

빚 때문에 고민하던 가장
명절 맞아 본가 가던 길에
아내·세 자녀 죽이고 자신도…
신변비관 ‘극단적 선택’ 잇따라

전문가 “명절엔 친척들과 비교
상대적 박탈감·중압감 커져” 분석
“인생… 답이 없다.”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유아무개(35)씨가 사건 직전 카카오톡에 남긴 글이다. 지난 20일 새벽 경남 거제시 둔덕면의 갓길에 세워진 싼타페 차량에서 유씨와 아내 정아무개(39)씨, 9살 딸, 6살 쌍둥이 아들 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와 아이들은 흉기에 찔린 상태였고, 유씨의 손목 등에서 자해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1차 부검 결과를 토대로, 유씨가 아내와 세 자녀를 살해한 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22일 밝혔다.

조선업체 협력업체 직원인 유씨는 아내 명의로 1억5000만원가량 빚을 졌다. 지난해 말 개인회생 신청을 해 매달 40만원씩 빚을 갚고 있었다. 거제에 살던 유씨 가족은 최근 아파트를 처분하고 근처 원룸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문홍국 거제경찰서 수사과장은 “유씨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 친척들이 몇차례 빌려준 적 있지만, 친척들도 빚이 왜 늘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경찰은 빚 때문에 고민하던 유씨가 명절을 맞아 부산 본가로 가는 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씨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평소 핵가족 단위로 흩어져 살던 이들이 명절 모임을 통해 다른 친척들과 비교당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특히 자신감이 부족한 이들은 엄청난 중압감을 느낀다. 이것이 극단적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고통을 겪던 유씨가 명절을 맞아 느낀 ‘상대적 박탈감’이 일종의 ‘기폭제’ 구실을 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실직 상태에 있던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서울 서초동 일가족 살해 사건과 비슷하다. 지난달 사건에서도 강아무개(48·구속 기소)씨가 가족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유씨 차량 안에서도 수면제가 발견됐다.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감이 위기 때 아내나 자녀의 목숨까지 거두는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도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명절에 생길 수 있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도 이런 중압감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 교수(상담심리치료학)는 “본인은 힘든데도 부모와 친척들을 보면 웃어야 하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슬픈데도 즐거운 척해야 하는 일은 더 큰 슬픔으로 남기 마련”이라고 했다.

연휴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는 유씨만이 아니다. 20일 밤 11시께 서울 봉천동 봉제공장에서 이아무개(50)씨가 흉기로 자해한 뒤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명절인데도 사는 게 힘들다. 죽으려 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21일 오전 경북 청도군의 한 저수지에서는 4살 남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날 오후 경북 경산시의 한 저수지에서는 이 아이의 어머니 오아무개(45)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우울증을 앓던 오씨가 아들을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설에 사람들은 앞날에 희망이 있는지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더 큰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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