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사님’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정치학 박사’다. 정치군인이 쿠데타로 반란을 일으켜 집권하는 ‘노하우’를 학문적으로 집대성했을까?
물론 아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발표해 받은 박사가 아니어서, 박사 앞에 ‘명예’라는 두 글자가 붙기는 하지만 청와대와 국가기록원의 인터넷 홈페이지 역대 대통령 기록관에는, ‘1984년 미국 페퍼딘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로 분명히 기록돼 있다.
당시 신문을 봐도 그는 틀림없는 박사다. ‘땡전뉴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1면 맨위 왼쪽 귀퉁이 ‘로얄박스’를 전두환씨 동정 기사로 거의 매일 채웠던 <조선일보>를 포함해 주요 신문들은 그의 명예박사 학위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청와대의 보도자료를 받아 쓴 흔적이 역력한 당시 기사들은 비슷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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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1월9일자 <조선일보> 1면
전두환 대통령은 8일 오전 청와대에서 미국 페퍼다인대학교의 노벨 영 이사장과 올라프 테그너 부총장으로부터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페퍼다인대학은 지난 82년 3월과 금년 9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전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찬양하면서 최고명예학위를 증여할 뜻을 전해온 바 있다.
전대통령은 학위를 받은 뒤 영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영 이사장 일행에게 오찬을 베풀었다.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근교 말리부에 위치한 페퍼다인대는 1937년에 설립된 대학인데 학생수는 7천여명, 교수진은 4백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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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공식 기록과 당시 보도 내용을 보면, ‘전두환 박사’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찬양”하면서 학위를 증여했다는 그 대학이 이를 사실상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페퍼다인 대학의 제리 덜로션 홍보이사(PR & News Director)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증정했다는) 사실은 이 대학 어느 기록이나 출판물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공식 기록이 없으므로, 페퍼다인대학 개교 이후 명예박사학위 수여자들의 명단을 작성할 경우 그는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전두환 박사’의 학위는, 받은 쪽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준 쪽엔 기록이 없어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명예박사학위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재미동포 조성룡씨가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전씨의 학위수여 내용을 본 뒤 페퍼다인대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조씨는 9월초 이 학교에 메일을 보내 12·12 군사 쿠데타, 광주, 삼청교육대 등을 언급하면서 “전두환의 어떤 점을 높이 사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는지, 지금이라도 이를 취소할 의향이 없는지” 등을 물었다. 그런데 페퍼다인의 홍보 실무자가 “명예학위에 관한 공식 기록이 없으며, 이사장 등 당시 관련자들이 모두 사망해 더이상 경위 파악을 하기는 힘들다”는 간단한 답변을 해온 것이다.
재미동포 제보 “전두환이 ‘박사’라는데…줬다는 대학은 없음”
조씨는 <한겨레>에 이런 내용을 제보했고, 기자와 함께 ‘사실’을 좇았다. 기자는 당시 신문에 실린 내용을 토대로 정부의 기록물을 뒤졌고, 조씨는 페퍼다인 쪽을 맡아 한국에서 새로운 내용이 나올 때마다 확인을 도왔다.
페퍼다인대, ‘전두환 박사’와 관련해 찾을 수 있는 정부 기록물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신문에 보도된 1984년 11월8일 청와대의 접견인사철을 보면, 노벨 영 이사장 등을 만난 기록이 있고 ‘명예학위 증정의 건’이라고 돼있다. 또다른 흔적은, 이듬해 3월 청와대에서 페퍼다인대에 보낸 회답친서였다. 기자는 친서에 학위와 관련된 언급이 있기를 기대하고 국가기록원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확인했으나 학위와는 무관했다. 페퍼다인쪽이 전씨 방미 기간 중 학교에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힘들 것 같다는 답신이었다. 노벨 영 이사장에게 보낸 회신에 “학교 방문이 힘들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하지만 로스엔젤레스 체류기간 중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아 양쪽이 어느 정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페퍼다인대 “전두환에게 학위 줬다는 기록 찾을 수 없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페퍼다인쪽에 거듭 확인을 요청했으나 페퍼다인에서는 사실을 밝힐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학위 수여 사진과 번역된 기사를 보고도 “노벨 영 이사장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당시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영 이사장이 대통령에게 학위를 수여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처음엔 실무자급이 다분히 사무적인 투로 응대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홍보를 맡고 있는 고위 책임자가 “앞으로 학위수여자 명단을 작성할 경우 포함시키지 않겠다”며 학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정도가 진전된 점이다. 조씨가 “다른 나라의 정부가 귀교의 이름을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는 기록을 바로잡을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엔, “높은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전념하겠다”는 정치적 수사로 피해갔다.
그렇다면 1984년 11월,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전두환씨가 직접 페퍼다인 이사장으로부터 받았다는 박사학위를 공개하고 이를 근거로 학교에 확인을 하기 전까지는, 세 가지의 추정이 가능하다.
추정1. 페퍼다인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우선 ‘현재’의 페퍼다인대쪽이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숨기고 싶어할 수 있다. 실제로 박사학위를 줘놓고도 한국에 “전두환 같은 사람한테 정치학 박사를 준 학교”로 알려지는 게 달갑지않아 이를 묻어두려 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박사학위는 실재하고 기록이 있음에도 페퍼다인쪽이 이를 부인하고 있을 것이다.
추정2. 페퍼다인의 이중플레이 ‘가짜 명예박사학위 장사’?
정말 ‘전두환 박사’의 기록이 없을 수도 있다. 박사학위를 들고 태평양을 건너와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전 전 대통령에 박사학위를 건넨 페퍼다인대쪽이, 한 나라의 국가원수에게 이른바 ‘가라’ 학위를 줬을 수도 있다. 사실 대학의 이사장이 박사학위를 들고 찾아와 전달하는 방식도 이례적이다. 보통은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 참석차 그 나라를 들렀다가 대학에 가서 학위를 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고 가짜 학위 장사를 했거나 아니면 한국에 분교를 열기 위해 사전 작업을 벌였을 수도 있다.
추정3. “본인도 박사학위가 필요하지 않겠나…이참에 그냥”
언급하고 싶지 않은 또다른 가능성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미국 한 대학교(올해 미국 대학 중 가장 캠퍼스가 아름다운 학교로 꼽혔다) 이사장과의 일상적인 만남이 학위 수여식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이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에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했을까하는 싶기도 하지만, 평화의댐을 건설하자고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던 정권임을 감안한다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추론은 아니다. 전씨가 “본인도 학위가 필요하지 않겠나”했다면 충성스런 측근들이 나머지를 기획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두환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박정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주요 정치인 중에 실제 학위 소유 여부를 떠나 박사 아닌 사람이 거의 없었다.
김학준 동아일보사 회장은 인천대 총장 시절인 1999년 <신동아> 6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승만 박사, 김규식 박사, 조병옥 박사, 장면 박사의 영향 때문인지 박사학위가 직접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정치세계에서 박사가 지나치게 중시됐던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전두환 박사’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적었다.
김학준 “전두환이 박사학위 없었다면 그나마 덜 웃겼을 것을”
“만일 그가 무식하나 가식없는 단순성의 상징적 군인과도 같은 자신의 이미지에 충실하게, 또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격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엄격성을 조금이라도 계승하여 ‘국가안보밖에 모르는 타고난 군인에게 명예박사가 왜 필요한가.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동안 명예박사 받았다는 얘기는 못들었다’는 명언을 남기면서 박사학위 없는 대통령의 반열에 섰더라면 그에 대한 숱하게 많은 우스갯소리들 가운데 하나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학 박사이면서 전두환 정권에서 제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전국구)을 지낸 바 있는 그는, 혹시 뭔가를 알고 있었을까.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