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자증과 성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불임은 혼인 취소 사유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11년 중매로 결혼한 의사 ㄱ(39)씨와 교사 ㄴ(33)씨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홉달 뒤 불임검사를 받았다. 남편 ㄱ씨는 무정자증과 성염색체 이상 진단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 일로 다투다 별거에 들어간 뒤 서로 이혼 소송을 냈다.
ㄴ씨는 ㄱ씨가 무정자증 등의 문제를 속이고 결혼했으며, 불임이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사유라며 혼인 취소를 주장했다. 1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충격을 받았을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봤다. 따라서 부부가 이혼하고 ㄴ씨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항소심은 “성기능 장애가 언제 나아질지 알 수 없고 자녀에게 유전될 수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혼인 취소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위자료 판단도 1심과 같았다. 민법은 “혼인 당시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고치기 힘든 병)”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때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는 엄격히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며 “ㄱ씨의 성기능 장애가 약물치료 등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런 장애가 부부생활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임신은 안 되도 성생활은 가능하다면 혼인을 취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이 사건은 부부 양쪽이 계속 원한다면 이혼 판결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판결은 질병을 이유로 혼인 취소를 하려 할 때 무정자증과 성염색체 이상은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기준을 세운 것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