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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검증’ 거부한 김기종, 그거 거부할 수 있는 거였어?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03-25 17:41수정 2022-08-19 17:36

[더(The) 친절한 기자들]
김씨,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현장검증 “몸 불편하다” 거부
영장 필요 없는 임의조사…묵비권처럼 응하지 않을 수 있어
무죄추정 원칙 위배·여론재판 변질 등 “개선해야” 목소리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해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김기종(55)씨가 지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의 ‘현장 검증’을 거부했습니다. 김씨는 이날 오후 호송차량을 타고 세종문화회관 후문에 도착했지만 끝내 차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김씨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현장검증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김씨는 현장 도착 10여분만에 서울구치소로 돌아갔습니다. “현장검증을 거부할 수도 있는 거였어?” “형사소송법 절차에서 현장검증의 의미는 뭐지?” 등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오고갔습니다.

현장검증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수사의 종류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수사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 행하는 ‘임의 수사’와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행하는 ‘강제 수사’로 나뉩니다. 임의수사와 달리 강제수사는 반드시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합니다. 피의자 신문, 참고인 조사 등이 임의수사에 속하고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등은 강제수사에 속합니다.

형사소송법 215조는 ‘압수, 수색, 검증’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검증’은 영장을 발부받아야 가능한 강제수사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야 하거나, 사체를 해부해야 하거나, 마약을 소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장검증은 영장이 필요없는 임의수사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실황 조사’라고도 합니다. 실황조사는 범죄와 관련된 물건이나 사람의 신체, 장소 등 현장 상황을 수사기관이 조사·감지하는 수사의 한 방법입니다. 실질적으로는 ‘검증’과 같습니다. 하지만 검증은 강제수사, 실황조사는 임의수사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장검증은 피의자의 말이 진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범행이 벌어진 현장에 직접 가서 경찰이 묻고 피의자가 답하며 범행 과정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조사실에서 질문과 답변을 통해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처럼, 현장검증은 현장에서 질문과 답변을 통해 피의자를 조사합니다. 말과 글로만 조사한 내용을 현장에서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피의자의 말이 진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죠. 특히 강력사건의 경우 유죄가 선고되면 형량이 높게 나오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진술을 확인하는 것이 수사기관뿐 아니라 피의자에게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현장조사를 현장에서의 질문과 답변이라고 본다면, 진술거부권(묵비권)이 있듯이 현장검증에 대한 거부권도 인정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피의자는 ‘당연히’ 현장검증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한 경찰서의 형사과장은 “피의자들이 현장검증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고, 한 검사 출신 변호사도 “현장검증 거부가 적잖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피의자가 현장검증 등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모습으로 간주돼 정상 참작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대체로 응한다고 합니다.

한편에선 현장검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현장검증이 수사상 필요하긴 하지만, ‘여론재판’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경찰은 안산 인질 살해 사건을 벌인 김상훈의 현장검증에서 그의 얼굴을 공개한 채 진행했고, 2012년 나주 초등생 성폭행범 현장검증 때는 피의자의 가슴에 ‘피의자’라고 적힌 커다란 명찰을 달게 했습니다. 수사기관에 의해 체포·구속된 피의자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봐야 합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장검증이 여론재판으로 흐르지 않도록 지금의 방식은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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