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장에 100만원 훌쩍 돌려쓰기·구입계 유행
“명품사려 돈모으는 중학생도”
영섭(가명·17·사진)이는 겉으로 보면 다른 서울 강북지역 고등학교 2학년생들과 다를 바 없다. 또래들에 견줘 조금 더 ‘차려입었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결코 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영섭이가 위아래로 걸치고 있는 옷이며 신발 등의 값을 모두 합치면 가뿐하게 100만원을 뛰어넘는다. 평범한 운동화처럼 보이는 신발만 해도 ‘질 샌더’가 디자인한 27만원짜리다. 중학교 3학년 이후 지금까지 산 명품이 500만원어치가 넘는다.
영섭이는 얼마 전 ‘신정환 구두’를 새로 마련했다. 방송인 신정환씨가 신고 텔레비전에 나와 유명해진 구치의 스니커즈다. 30만원대 후반인 이 신발을 영섭이가 사려면 한 달 용돈 5만원을 한 푼도 안 쓰고 반년 이상 모아야 한다. 어떻게 샀을까? 영섭이는 친구 4명을 끌어들여 단번에 샀다. 이 신발을 친구들끼리 1~2주씩 돌아가며 신는다. “엄마요? 절대 몰라요. ‘짝퉁’이라고 말하면 그런 줄 아세요.”
명품 열풍이 남자 고등학교 담장 안으로도 들어갔다. 적은 용돈으로 명품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짜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 됐고, 순번을 정해 명품을 사는 명품계나 중고 및 인터넷 명품 거래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서울 강북의 ㄱ고 1학년 김현규(가명·16)군은 친구 2명과 ‘명품 품앗이’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명품을 사서 바꿔 쓴다. “여자 친구 만날 때나 축제 때 서로 돌려쓰고 있어요. 친구 셋이 모이면 1석3조잖아요. 다른 애들은 5명을 한조로 한 달에 4만원씩 모아 명품계를 많이 해요.”
ㄷ공고 1학년 강철수(가명·16)군은 주로 인터넷 중고 명품 사이트에서 명품을 사고판다. 명품을 사서 어느 정도 쓴 뒤 경매에 부쳐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새 명품을 산다. 명품 살 돈을 모으려고 인터넷 사업을 하는 청소년까지 있다. ㅅ디자인고 2학년 한동원(가명·17)군은 온라인 쇼핑몰마다 가격 차가 큰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싸게 산 뒤 다른 사이트에서 웃돈을 얹어 되판다. 한군은 이렇게 남긴 차익을 모아 질 샌더 스니커즈와 구치 허리띠를 샀다.
남자 고등학생들의 명품 열풍은 ‘여학생들만큼은 아닐 것’ 또는 ‘극히 일부일 것’으로 여기는 일반적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다. 서원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김영란씨가 지난해 대전지역 고교생 504명(남자 266명, 여자 238명)을 상대로 명품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매우 좋다’나 ‘좋다’고 응답한 남학생 비율이 21.6%로 여학생(9.5%)의 갑절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더 광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명품을 더욱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남고생들이 명품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명품 입으면 애들이 ‘와~’ 하거든요. 어깨가 으쓱해지죠.”(김현규군) “명품은 다르니까요. 좋으니까 사는 거죠. 그리고 반에 다른 누가 명품을 갖고 있으면 경쟁심리가 생기기도 하고요.”(다른 고2) “유행이죠, 뭐.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것 보고 사는 거예요. 좋으니까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는 것도 좋고….”(영섭)
남학생 사이의 명품 열풍은 점점 연령대가 내려가는 추세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교 1학년 김덕호(16)군은 “명품 열풍을 취재하려면 중학교로 가 보는 게 나을 것”이라며 “요즘에는 ‘버버리’ 제품을 사려고 돈을 모으는 중학생들도 많다더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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