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모텔촌.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왜 피해자 얘길 자꾸 물어봐, 김 기자 대체 왜 그래?”
지난달 26일 관악구 봉천동 ㅇ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14살 ㅎ양. 경찰이 수사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저는 가출한 ㅎ양이 성매매 조직에 희생돼 숨지기까지의 과정을 집중적으로 질문했습니다. “ㅎ양의 가출 이유는 뭡니까?” “가정 형편은 어땠습니까?” “어떤 경위로 성매매 조직에서 일하게 됐습니까?” 등등…. 브리핑을 하던 강력계 형사는 제 질문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성문제가 얽힌 사건에서 피해자의 신상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모두들 피해자에 관한 질문은 삼가는 분위기에서 저는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신경쓰지 않는 한 마리의 ‘기레기’가 돼버렸습니다.
제가 왜 기레기를 자처하고 질문을 했냐고요?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야 할 ㅎ양은 2학년을 끝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지난해 11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온 뒤 5개월이 지나 서울의 한 모텔에서 발견되기까지 ㅎ양의 생활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ㅎ양의 가출 후 5개월을 재구성해보면, ㅎ양은 숨지기 한 달 전인 2월 초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대화방에서 두 명의 남성을 만납니다. 이들은 성매매 조직을 운용하고 있었고, ㅎ양은 이곳에서 1시간에 13만원을 받고 일을 하게 됩니다. 27살 김씨가 주도한 이 조직은 알선책 남성 3명, 성매매 여성 2명 등 5인 1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28살 박씨가 성매매 여성을 관리했고, 28살 최씨는 차량 운전을 맡았습니다. ㅎ양은 번 돈을 알선책과 7 대 3으로 나눴다고 합니다. 1시간 성매매의 대가로 ㅎ양은 3만9천원을 받은 것입니다.
ㅎ양은 왜 집을 나와 이런 생활을 했을까요? 여성가족부가 2012년 내놓은 <청소년 유해 환경 접촉 종합 실태 조사>를 보면, 중고등학생의 가출 이유는 ‘부모님 등 가족과의 갈등’이 61%로 가장 많습니다. 두번째 이유인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12.8%)의 5배에 이릅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ㅎ양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져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ㅎ양과 고등학생인 언니를 키웠다고 합니다. ㅎ양의 가정환경을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가 2007년 내놓은 <가출 청소년 및 청소년 쉼터 실태 조사>를 보면, 여성 청소년이 가출했을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잠잘 곳이 없을 때’입니다.
가출 뒤 4개월이 되던 때 성매매 조직과 만난 ㅎ양에게 만약 하룻밤을 안전히 보낼 곳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벌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연간 가출 청소년이 2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경찰에 신고되는 가출 건수는 약 2만9천건, 신고조차 되지 않은 가출 청소년 19만명이 길거리에서 떠돌다가 범죄에 노출되고 ㅎ양처럼 희생되기도 합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ㅎ양의 살인사건 배경에는 10대 가출 청소년을 착취하는 성매매 시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출한 뒤 생계가 막막해 성을 파는 10대 여성 청소년, 또 그 성을 사는 성인 남성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 돈을 버는 성매매 조직과 모텔업주들, 이번 사건은 이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작은 편린일 것입니다. 제가 ‘기레기’를 자처하면서까지 ㅎ양의 삶에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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