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재판부 판단
CB 발행-실권-배정 부적절
사실상 이건희 회장 돈으로 인수
‘계획적인 지배권 이전’ 판단
사실상 이건희 회장 돈으로 인수
‘계획적인 지배권 이전’ 판단
법원은 4일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 헐값 매각을 이재용씨 등을 위한 지배권 확립의 일환으로 판단하면서 헐값 매각에 이르는 과정의 부당함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딸들에게 증여한 금액이 고스란히 전환사채 인수대금으로 사용된 사실도 판단의 주요 근거로 들어, 이 회장의 공모 혐의를 입증하려는 검찰에 힘을 얹어줬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이용한 계획적인 지배권 이전으로 판단했다. 손실을 무릅쓰고 갑자기 진행된 에버랜드의 증자, 이사회 회의록까지 조작하면서 이뤄진 주주 배정, 전환사채 인수권한을 가진 계열사들의 실권 등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하기 직전에 이 회장이 실권한 중앙일보 전환사채를 홍석현 회장이 인수해 중앙일보의 최대 주주로 떠오른 점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이 갑자기 기획된 점 △이재용씨가 전환사채 배정 결의 이전에 미리 인수자금을 준비해둔 점 등을 들며, “주주우선배정 방식의 형식을 가장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이재용씨 등에게 지배권을 이전할 목적으로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 등에게 자사의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넘기기로 한 에버랜드의 이사회 결의부터 무효라고 판단했다. 1996년 10월 에버랜드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씨 등에게 헐값 배정을 결의한 회의에 17명의 이사 가운데 9명이 참석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사 1명이 외국출장 중이어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전환사채 지분을 인수한 제일제당 쪽에 추가인수 의사를 묻지 않고 이씨 등에게 곧바로 넘긴 행위의 부당함도 지적했다. 또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할 정도로 긴박한 자금수요가 없었고, 신용등급도 좋아 금융기관으로부터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는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정관을 어겨 무효인 이사회 결의만 거친 채 이씨 등에게 에버랜드 주식의 실제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7700원의 전환가격으로 배정해 불과 100억원도 채 안되는 자금으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인수하게 한 것은 실질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에버랜드의 투자가치가 없고 자체적으로 경영이 악화돼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했다”는 삼성 계열사 주주법인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이 악화됐다는 중앙일보와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이 같은 기간에 제일기획 등의 계열사 주식이나 에버랜드의 시설이용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에버랜드가 투자가치가 없다거나 자체적인 경영여건 악화로 부득이 실권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환사채의 적정가치와 관련해 “순자산을 전체 주식 수로 나눈 1주당 순자산가치 22만3659원의 29분의 1 가격인 7700원에 매각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면서도 “검찰이 근거로 든 8만5천원에 이뤄진 거래는 연리 4~5%의 이자를 더한 금액으로 되사주겠다는 약정에 따른 것으로, 에버랜드 주식가치가 적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결국 “당시 에버랜드 주식의 주가를 특정할 수 없어 손실액수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특경가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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