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종합민원실에 들어선 한 외국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팔 국적인 치트러카 어먼(50)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도움을 요청하려던 방글라데시인은 “비자를 연장하고 싶은데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어먼은 필요한 서류를 영어로 설명해줬다.
외국인의 소송업무를 도와준 어먼은 서울행정법원에 채용된 직원이다. 네팔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어, 파키스탄어, 인도어, 일본어, 영어 등 6개 국어에 유창하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위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면접 제안을 받고 지난해 5월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한국을 처음 찾았다고 한다. 네팔 탁구 대표선수 자격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건 1991년 일본 유학을 갔다가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하면서다. 1996년부터 20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그는 “당시 어학원에 다녔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비자연장 서류를 준비해 가면, 늘 몇 번씩 되돌려 보냈다. 반면 똑같은 서류를 갖고 간 미국, 일본 친구들은 문제가 없었다. 아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도움을 주고 있는 외국인들 처지가 남의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열흘간 서울행정법원 외국인전용창구를 찾은 이는 142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외국인 14명을 상담하며 도움을 주는 셈이다. 국적별로는 파키스탄인이 66명으로 가장 많았고, 카메룬(19명), 나이지리아(17명) 순이었다. 이들 가운데 90% 이상은 난민 소송과 관련해 문의한다고 한다.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되는 난민사건은 2013년 171건에서 2014년 409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4월29일까지 256건이 접수돼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는 800건가량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어먼이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언어가 안 통해 소송을 포기하거나, 재판 기일을 몰라 법정에 나오지 않는 경우다. 그는 “최근엔 코트디부아르인이 온 적이 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땐 손짓, 발짓을 해서라도 중요한 건 꼭 일러주려고 한다. 재판 기일에 두번 빠지면 소 취하가 되니까 사건번호만큼은 꼭 기억하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런 그를 잊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7~8개월 전 찾아온 파키스탄인이다. 요리를 잘한다고 가족들과 놀러 오라고 했는데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1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 일에 뿌듯함도 느꼈다”고 했다.
요즘 어먼의 가장 큰 걱정은 고국의 지진 소식이다. “셋째 형 집에 금이 좀 가고, 다른 가족들은 괜찮다고 한다. 멀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5남3녀 중 막내인 그는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을 가족과 이웃들 걱정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라고 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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