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전북 장수군에 사는 홍정자씨 가족이 ‘한누리시네마’의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최신 개봉작 <어벤져스2>를 보고 있다. 왼쪽부터 홍씨의 딸 김경애, 아들 김대성, 며느리 김정자, 남편 김승렬, 홍씨, 동생 홍부영씨. 사진 작은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전북 무주군의 작은 시골 성내마을에 사는 원종태(76)씨는 자칭 ‘극장 마니아’다. 원씨는 지난달 28일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산골영화관’을 찾아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2>를 3차원(3D) 영화로 봤다. 화제가 됐던 영화 <국제시장>은 초등학생 손자를 데리고 가서 챙겨 봤다. 원씨는 “지난해 마을에 극장이 생기기 전에는 등나무 운동장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 놓고 봤다. 지금은 따뜻한 극장에서 분위기 좋게 본다. 문화생활 하는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6년 전 서울에서 전북 장수군 노곡리로 귀농한 홍정자(73)씨는 한달에 한번 온 가족이 모여 영화를 본다. 홍씨네 과수원 근처에 2개관 90석 규모를 갖춘 ‘한누리시네마’가 있어서다. 홍씨는 “귀농하면 극장 못 갈 줄 알았는데 5년 전 집 근처에 영화관이 생겨 서울에서처럼 영화 구경 잘 다니고 있다”고 했다.
시골마을에서는 영화 구경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4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를 보면, 연간 관람 횟수가 가장 많은 서울은 5.89회, 가장 적은 전남은 1.99회였다. 수도권·광역시 주민들은 한해 3.6회 이상 영화를 보지만, 일반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의 영화관람 횟수는 그보다 적었다. 사는 곳에 따라 영화 보는 횟수도 달라지는 것이다. 지역별 영화관 편중도 심해 전국의 극장 356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4%가 서울(76곳)과 수도권(81곳)에 몰려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집중돼 있어, 영화관 없는 지역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작은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은 이런 ‘영화 격차’를 앞장서 해결하고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군 단위 마을에 산골영화관·한누리시네마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전북 장수군을 시작으로 지자체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을 적극 투자해 강원 홍천, 인천 강화 등 군 단위 마을 8곳에 영화관을 지었다. 영화관은 인구 2만~10만 지역에 맞게 멀티플렉스의 절반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는 150석 규모의 상영관 6~10개를 지어 관람객이 감소하면 운영 위기를 겪지만, 시골에선 100석 안팎의 좌석을 꾸린 뒤 영화 4~5편을 개봉하면 수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 적자를 면치 못했던 작은 영화관은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다. 사업을 접지 않고 이어온 결과, 22개 지역에 추가 영화관을 추진할 정도로 사업이 커졌다. 관람료도 5천원으로 저렴하게 정해 관람객 수를 늘리고, 디지털 배급 시스템을 이용해 영화 한편당 필름 제작비 200만원을 줄였다. 김선태 이사장은 “장수군에 첫 영화관을 지을 때만 해도 유사한 성공 사례가 없어 주변에서 실패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군청이 전기세를 지원하고 적자가 발생해도 책임지고 운영하기로 수탁 운영자와 협약을 맺으면서 2년 전부터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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