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이자 한의사 고은광순씨.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긴급조치 9호위반 항소심 패소에
“돈 받으려는 목적 아니라
잘못된 판결 바로잡으라는 의미”
“돈 받으려는 목적 아니라
잘못된 판결 바로잡으라는 의미”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여성운동가 고은광순(60)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배상액을 단 1원으로 낮춰 대법원에 상고했다. 법원의 과거사 배상 판결이 ‘역주행’하는 상황에서 긴급조치에 따른 수사·재판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대법원 판결로 남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고은광순씨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과거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금도 긴급조치를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하면서 헌법 가치를 수호하지 못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상고 이유를 밝혔다. ‘1원 청구’에 대해서는 “돈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법부 스스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판단하고자 상징적 의미로 1원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7년 대학 후배들에게 ‘시위에 사용할 검은 리본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9호 위반죄가 적용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확정받았다.
2013년 4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라고 결정하자, 고은광순씨는 그해 6월 재심을 청구했고 10월에 무죄를 받았다. 이후 영장 없이 체포된 뒤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고문 사실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고, ‘위헌인 긴급조치에 근거해 기소·재판한 행위는 위법한 직무집행’이라며 1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긴급조치에 근거한 기소·재판 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한 직무집행이 아니다. 고문 등 국가기관의 구체적 불법행위가 있고 이로 인해 유죄를 받았다는 개연성이 있어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이에 과거사 배상을 못마땅해하는 정부와 보수 여론을 의식한 대법원이 긴급조치를 위헌이라고 밝힌 입장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긴급조치를 발동한 이가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점도 ‘배경’으로 거론됐다. 이후 하급심에서는 같은 논리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잇따랐고, 고은광순씨도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고은광순씨를 대리하는 설창일 변호사는 “긴급조치를 발동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국가기관 종사자의 수사·기소·재판 행위가 총체적으로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또 고은씨의 사례가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조작됐다는 점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투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