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 명분으로 국정원에 의뢰
대법원 스스로 사법부 독립성 훼손
“양심·정치적 견해 검증 우려 커”
서울변회, 해당규정 헌법소원 검토
대법원 스스로 사법부 독립성 훼손
“양심·정치적 견해 검증 우려 커”
서울변회, 해당규정 헌법소원 검토
대법원이 최근 2년간 경력판사 임용 후보자들의 신상정보를 국가정보원에 넘겨 ‘면접조사’를 하도록 한 사실(<한겨레> 5월27일치 9면)이 드러나면서, 대법원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신원조사 규정을 이번에 고쳐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27일 대법원 비밀보호규칙과 국정원 보안업무규정을 보면, 법원행정처장은 판사 임용 예정자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및 신뢰성’을 알아보기 위해 국가정보원장에게 신원조사를 의뢰하도록 돼 있다. 조사 요청 땐 대상자 명단, 신원진술서, 사진 등 정보를 함께 제공하도록 했다. 국정원은 △국가관 및 직무자세 △준법성 및 보안의식 △생활상태 △성격 및 품행·대인관계 등을 평가하고 결과를 대법원에 보낸다. 대법원은 해당 자료를 인사서류에 첨부해 보관하고, 검토 뒤 인사총괄심의관이 ‘국가안전보장에 지극히 유해로운 정보가 발견되었을 때’는 임용권자에게 임용 보류를 건의할 수도 있다. 신원진술서 양식을 보면, 기본 신상정보 외에 △정당 및 사회단체 가입 여부 및 가입 동기 △북한 및 해외이주 가족·친족 정보 등을 쓰게 돼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신원조사 목적에 부합하도록 ‘국가안보에 대한 위험성’ 측면에서만 판단 자료로 활용하고,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 등은 법관 임용 심사자료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어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한다는 것은 의미가 광범위하고 다의적이어서 결국 양심이나 정치적 견해를 조사하는 것과 같다. 헌법이 정한 양심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몇년 전에는 민주노총 법률원 출신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시절 성적이 5위 안에 들었는데도 경력법관 지원에서 탈락해, 법원이 성향을 문제삼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판사 임용 절차나 기준을 숨기는 비밀주의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국정원이 판사 지원자들을 비밀리에 면담하고 합격 기준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사법권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 것과 다름없다. 대법원은 판사 임용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판사 임용에 어떤 세력이나 정치적 입장도 개입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들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변회는 해당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 등 법률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을 내어 “임용 예정자가 아닌 지원자를 대상으로 신원조사를 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며 “이번 일은 단순한 규정 위반을 넘어서 국정원과 대법원이 헌법 수호 책무를 포기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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