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경북 경주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00번째 회원 시상식’에서 한택근 회장이 김희진 변호사에게 기념패를 전달하고 있다. 민변 제공
1988년 변호사 51명 뜻 모아 조직
김근태 고문·공무원 간첩사건 등
인권·민주주의 수호 최전선에 서
흡연 피해 등 공익소송으로 넓혀
“규모 커져 회원들 간 소통 고민”
김근태 고문·공무원 간첩사건 등
인권·민주주의 수호 최전선에 서
흡연 피해 등 공익소송으로 넓혀
“규모 커져 회원들 간 소통 고민”
1988년 5월28일, 경기도의 한 콘도에 인권변호사들이 모였다. 손에는 국가보안법 문제 논의 등 일정이 담긴 누런 갱지가 두장씩 들려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시작이었다.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 등은 인권 탄압 상황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51명으로 출발한 모임의 이름은 고 조영래(1947~90) 변호사가 제안했다.
‘가족적’ 분위기로 출발한 민변이 27년 만에 회원 1000명을 아우르게 됐다. 보수적 분위기의 법조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활동으로 주목받으면서도 비주류 또는 소수파로 인식돼온 측면도 있지만 이제 규모 면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30일 저녁 경북 경주의 한 호텔에서는 민변 변호사 130여명이 참석해 ‘회원 1000명, 민변 그 길을 묻다’라는 이름으로 제28차 정기총회를 열었다. 규모가 커지면서, 처음 보는 회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사회를 맡은 류신환 변호사는 “인권 옹호라는 창립 가치는 변함이 없지만, 시대가 변하고 다양성이 공존하면서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1000번째 회원’이 가입한 것은 4월27일이다. 변호사 수가 늘면서 2000년대 후반 500명을 돌파한 회원 수는 첫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배출된 2012년 790명이 됐다. 지난해 934명이었다가 불과 수개월 만에 1000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1004명에 이른다. 모임의 운영자금은 회비로 충당된다.
초창기에 ‘김근태 고문사건’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시국사건에 주로 대응한 민변의 역할은 시대 변화에 따라 점차 다양해졌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시국사건 ‘수요’가 줄면서 ‘공익소송’으로도 발을 넓혔다. 1998년 공익소송위원회가 만들어져 김포공항 소음피해 소송, 흡연 피해자 집단소송을 대리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시국사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하고 수백명을 무료로 변론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택근 민변 회장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 민변이 가장 바쁜 단체 중 한 곳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민변은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1·2심 무죄를 이끌고, 증거를 조작한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법정에 세우는 계기를 마련했다.
민변의 역할이 커지면서 ‘견제’ 시도도 활발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국가보안법 사건 등에서 피의자에게 진술 거부 또는 혐의 부인을 요구했다며 민변 변호사 2명의 징계를 신청했다. 또 민변 변호사 6명이 과거사 손해배상 사건을 불법 수임한 의혹이 있다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회장은 “기득권이나 보수언론에서 민변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 같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잇따라 파헤치자 징계 신청과 기소 등으로 ‘역공’을 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4시간가량의 총회에서는 그동안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하주희 변호사는 “그간 활동하는 데 민변이 큰 울타리가 됐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서선영 변호사는 “회원이 1000명이 되면서 얼굴 볼 기회가 적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후배들에게 알고 있는 것을 충분히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회원 1000명 시대를 맞으며 외부에 대해서는 물론 내부에서도 ‘소통’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한 회장은 “1000명이 모인 만큼 생각은 더 다양해지고, 특히 젊은 변호사들과 원로 변호사들 간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잘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또 외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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