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6억4천만원 진 어머니 숨지자
자녀들은 모두 상속포기
채권사가 남편·손주들 상대 소송
대법 “자녀가 상속포기땐
배우자와 손주가 공동상속” 확정
자녀들은 모두 상속포기
채권사가 남편·손주들 상대 소송
대법 “자녀가 상속포기땐
배우자와 손주가 공동상속” 확정
자녀 모두가 상속을 포기한다면 배우자가 단독상속하는 게 아니라 손자·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손주들도 조부모가 남긴 빚에 공동 책임을 지라는 것으로,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판단이어서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ㅂ사가 사망한 이아무개씨의 6~10살 손주 3명과 이씨의 남편(70)을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에서, 손주 3명을 공동상속인으로 인정하고 4명이 각각 9000여만원씩 모두 3억6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이씨는 2010년 8월 ㅂ사에 갚아야 할 빚 6억4000만원을 남긴 채 숨졌다. ㅂ사는 이씨의 자녀 2명이 상속을 포기하자, 이씨 남편과 손주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민법은 1순위 상속자를 자녀와 배우자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 판례는 1순위 상속자 모두가 상속을 포기하면 차순위인 손주들이 상속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경우는 배우자는 상속을 받고 자녀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한 사례인데, 1순위인 배우자의 단독상속으로 볼지, 차순위인 손주들도 공동상속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하급심에서 논란이 있었다.
대법원은 “상속 순위와 상속포기 효과를 규정한 관련 조항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면, 망자의 배우자와 자녀 가운데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손주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밝혔다. 만약 자녀 일부만 상속을 포기할 경우 포기한 자녀의 자식, 포기하지 않은 자녀, 배우자가 공동상속인이 된다. 이에 따라 조부모가 재산보다 많은 빚을 남기고 사망할 경우 손주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으려면 상속포기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은 “이씨의 손주들이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명시적 규정이 법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들은 할머니가 숨진 뒤 부모가 상속을 포기했다고 해서 자신들이 상속인이 된다는 점을 알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며 “민법에서 정한 상속포기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민법에서는 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상속포기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씨의 손주들은 상속포기를 신청한 뒤 이번 사건에 대해 별도의 이의제기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향후 다른 사례에서도 손주들이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알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는 점이 인정되면 그때부터 일정 기간 안에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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