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기금 입금 이전 비자금 조성”
현대그룹 부실 감사보고서가 논란 불씨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남북협력기금 유용 논란이 현대그룹의 ‘부실 감사보고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에 따라 내부 감사보고서를 근거로 김 전 부회장을 공식 퇴출시키고 정부와 마찰을 빚어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아산호는 궁색한 처지로 몰리게 됐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6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그룹한테서 지난 4일 ‘경영 감사보고서’를 제출받아 검토한 결과, ‘김윤규씨가 남북경협기금(현대 쪽이 ‘남북협력기금’을 잘못 쓴 말)을 유용하여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통일부의 검토 결과, 김 전 부회장은 비자금 조성을 위해 2003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모두 50만여달러(한화 5억여원)를 금강산 현지 사업소 금고에서 현금으로 인출했다. 특히 집중적으로 돈이 인출된 시기를 보면 2003년 10월 20만달러(한화 2억여원), 2004년 23만7천달러(한화 2억3천여만원)였다. 2005년 1월 이후 인출한 돈은 6만4천달러(한화 6천여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통일부가 수출입은행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 도로공사 중도금으로 현대아산에 한화 14억4200만원을 입금한 시점은 2004년 12월31일이었다. 김 전 부회장이 돈을 인출한 시점과 협력기금의 지급 시점을 고려하면 협력기금을 비자금으로 전용할 수 없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현대그룹 감사팀이 ‘남북경협기금 관련’이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통일부는 현대 쪽의 설명을 덧붙였다. 김 전 부회장이 현금을 인출하면서 협력기금이 투입되는 도로공사비 항목으로 ‘허위’ 회계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그룹 감사팀은 회계장부에 나타난 서류상의 수치만 보고 ‘남북경협기금 관련’이라고 단정해 버린 셈이다. 이에 따라 현정은 회장의 앞으로의 ‘선택’이 크게 주목된다. 김 부회장을 퇴출시킨 정당성의 핵심 근거가 감사보고서였는데, 보고서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받침돌이 허물어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 내부 문제를 남북협력기금이라는 정부 차원의 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불씨를 키운 꼴이 됐다.
정부는 현대 쪽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봉조 차관은 이날 이례적일 정도로 강한 어조로 현대그룹 쪽에 사과를 요구했다. 이 차관은 “현대는 이런 기업 내부보고서가 언론에 사전 유출된 점에 대해 명확히 그 경위를 해명해야 할 것이며, 정부와 국민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하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응당한 책임’의 내용과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남북협력기금이 ‘비자금’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어느 정도 도덕적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앞으로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협력기금 집행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드러나면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당혹스런 현대 “협력기금 직접 유용 뜻 아니었다” 잘못 시인·사과 현대그룹은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에 대한 내부감사보고서 내용의 일부가 잘못됐다는 통일부 발표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6일 오후 통일부의 기자설명회 직후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현대는 “내부감사보고서에서 ‘남북경협기금 관련 비자금 조성 50만달러’라고 표시된 부분은 김윤규 전 부회장이 남북협력기금이 관련된 금강산 도로포장공사에서 회계조작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지, 남북협력기금을 직접 유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라며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 해당기관 및 국민 여러분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송구스런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통일부의 지적을 일단 수용한 셈이다. 그러나 현대는 “김 전 부회장이 2003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자재대금 조정, 공사 허위계약, 입금분 미처리 방식으로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총 70만3천달러인 것으로 내부감사에서 드러났다”며,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인사조처의 정당성을 거듭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보고서에서 남북협력기금 관련 부분이 표현상 잘못은 있지만, 부실감사는 아니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민간기업 감사에서는 의혹만 확인하더라도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데 정부기관에서는 명확한 기준과 증거로 문제를 보기 때문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어쨌든 내부 인사참고용으로 활용해야 할 보고서가 밖으로 유출되고, 일부이지만 부실한 부분도 드러나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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