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신소영 기자
대법원의 판사 동원 비판
대구 변호사 사례도 밝혀
“김찬돈 법원도서관장이 전화
빨리 상고법원 설치해야 말해”
대구 변호사 사례도 밝혀
“김찬돈 법원도서관장이 전화
빨리 상고법원 설치해야 말해”
대법원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판사들을 동원해 변호사들에게 찬성 입장을 종용하고 있다며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반발하고 나섰다. 사법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여론몰이를 하려 한다는 비판이어서, 상고법원 설치를 둘러싼 법조계 내 분란이 심화하고 있다.
변협은 10일 낸 성명에서 “최근 전국의 판사들이 변호사들에게 전화 등으로 대법원의 현안인 상고법원 설치에 관해 찬성하는 의견을 표명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변호사들에게 의사결정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으로, 사법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하는 이익단체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성명은 지방변호사회별로 상고법원 신설에 대한 찬반 의견 표명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왔다. 변협 차원에서는 반대 입장을 낸 바 있다. 부산·울산·경남 지방변호사회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반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찬성 입장을 냈다. 대구지방변호사회는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43명 중 73%인 104명이 찬성했다고 9일 밝혔다.
변협은 변호사들의 의견 수렴 과정에 ‘갑’의 지위에 있는 판사들이 개입하는 것은 변호사의 독립성과 자율성 침해라는 입장이다. 일례로, 법원장급인 김찬돈 법원도서관장은 최근 대구지역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고법원 설치의 필요성을 설명했다고 한다. 대구지역의 한 변호사는 “김 관장이 ‘상고법원이 생기면 변호사들 사건이 늘어난다. 대법원에 사건이 밀려 있는데, 빨리 상고법원을 설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 관장은 올해 2월 법원도서관장이 되기 전 24년간 대구에서만 판사 생활을 했다. 지역 법조계에 영향력이 큰 고위직 판사가 이런 전화를 한 데 대해 다른 변호사는 “변호사들의 의견 형성에 힘있는 판사가 개입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관장은 “최근 대구지방변호사회와 법률정보 공유 협약을 체결하려고 몇몇 변호사와 통화하면서 상고법원에 대해 잘 모르는 변호사들이 있어서 ‘대법원에서는 이런 취지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한 것뿐인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대법원은 상고사건 중 법령 해석이 새로 필요하거나 사회적 의미가 큰 사건만 대법원이 맡고 나머지는 새로 만들 상고법원이 담당하도록 법원 조직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법관 14명으로는 폭증하는 사건들을 제대로 심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역점사업이기도 한 이 계획은 국회를 통해 법안으로 발의돼 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판사들로 구성된 상고법원이 최종심을 맡으면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고 ‘삼심제’를 규정한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전에는 스스로 법안 발의를 할 수 없는 사법부가 상고법원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 지방법원장들을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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