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을 내비치는 발언을 했다. 조 전 부사장이 ‘오너’인 자신의 딸이긴 하지만,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복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리 에어쇼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부르제 공항을 찾은 조 회장은 16일(현지시각)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조 전 부사장 등 자녀들의 역할 변화를 묻는 질문에 “덮어놓고 (기업을) 넘기지 않겠다. 세 명이 각자 전문성이 있으니 역할과 전문성을 최대로 살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조 회장은 애초 이런 질문에 “여기서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 다 끝난 것이 아니고 할 얘기도 많으니”라고 말을 아꼈으나, 질문이 이어지자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조 회장은 또 조 전 부사장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염두에 둔 듯 “눈물을 흘려보고 찬밥도 먹어보고 고생도 해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성’을 거듭 언급한 것을 보면 어떤 역할을 줄지를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미국 뉴욕발 대한항공 A380 항공기에서 승무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고 항공기를 게이트로 되돌리게 한 혐의(항공보안법 위반 등)로 지난 1월 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2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존감을 무너뜨린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심이 있었다면, 직원을 노예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지난달 항소심에서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은 구속된 지 143일 만에 풀려났다.
조 전 부사장은 “자숙과 반성”을 하겠다며 상고를 포기했으나 검찰이 상고해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을 고발한 참여연대의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항소심 판결문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사건 당시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린 박창진 사무장 등 피해자들의 고통이 여전한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는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조 회장 일가가 우리 사회의 갑을 문제 등에 좀더 깊은 성찰을 한 뒤 내놔야 할 얘기”라고 했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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