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6일 오후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을 둘러싼 전원합의체 사건 공개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공개변론
바람피운 배우자가 적반하장식 이혼 청구를 해도 받아줘야 할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6일 이 질문을 두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법정에서는 잘못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불허하는 ‘유책주의’와, 실제 혼인생활이 파탄 났다면 잘못한 쪽의 이혼 청구도 받아줘야 한다는 ‘파탄주의’가 맞붙었다.
대법원이 판례 변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회부 대상으로 삼은 사례는 남편 ㄱ(68)씨와 아내 ㄴ(65)씨 사건이다. ㄱ씨는 ㄴ씨와 갈등을 겪다 2000년 집을 나와 혼외자를 낳고 다른 여성과 살고 있다. 그는 신장투석을 하는 등 건강이 안 좋은 자신을 보살피는 것은 동거녀라면서, ㄴ씨와는 이혼하고 싶다고 소송을 냈다.
반면 ㄴ씨는 남편이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있고, 미혼인 두 자녀 때문에라도 이혼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기존 판례대로라면 법원은 ㄴ씨 편이다. 혼인생활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 청구 자격이 없다는 것(유책주의)으로, 이 경우 상대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혼이 불가능했다. 1·2심도 혼인관계 파탄 상황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판례에 따라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탄주의쪽 “혼인생활 이미 파탄땐
깨끗이 청산시키게 해야”
유책주의쪽 “상대 배우자·자녀 위해
보호 방안 우선 마련해야”
“가혹한 결과 초래땐 불허” 절충안도 공개변론에서 ㄱ씨 쪽 김수진 변호사는 “이미 혼인이 파탄 났다면 깨끗한 청산을 위해 이혼을 허용하고, 대신 위자료와 재산분할에서 상대 배우자와 자녀를 더 강하게 보호하면 된다. 유책주의를 엄격히 지키면 당사자들이 상대의 잘못을 입증하려 들 뿐, 혼인관계 구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ㄴ씨 쪽 양소영 변호사는 “한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추구권과 생존권 침해로 연결된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이 보호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아직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지급 수준은 피해 배우자를 보호하기에 부족하다. 바람피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며 협박해 두려움에 떠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대법원의 유책주의 판례는 1965년부터 유지돼 왔다.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고 이혼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파탄주의 관점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혼인관계 파탄 책임을 반드시 한쪽에만 물을 수 없는데다, 재산분할제도 도입에 따라 이혼 때 여성이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줄기도 했기 때문이다. 양쪽 주장을 듣던 대법관들은 각 주장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박보영 대법관은 “파탄주의를 채택하면 혼인을 지키려고 노력한 배우자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실제 많은 어머니들이 노년을 함께 보내려고 배우자의 잘못을 용서하고 희생하면서 가정을 지켜왔는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ㄱ씨 쪽 참고인인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형식적으로 혼인관계가 유지돼도 상대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배우자와 자녀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면 이혼을 불허하는 규정을 둬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간 절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은 “이혼해도 자녀 부양 의무는 여전한데, 파탄된 상태라면 혼인의 껍데기가 유지될 필요가 있는가”라며, 유책주의 옹호론 쪽에 물었다. 이에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이혼에 대한 편견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명목상 혼인관계 유지만으로도 배우자와 자녀에게 주는 안정감이 크다. 파탄주의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이혼 때 배우자와 자녀 보호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깨끗이 청산시키게 해야”
유책주의쪽 “상대 배우자·자녀 위해
보호 방안 우선 마련해야”
“가혹한 결과 초래땐 불허” 절충안도 공개변론에서 ㄱ씨 쪽 김수진 변호사는 “이미 혼인이 파탄 났다면 깨끗한 청산을 위해 이혼을 허용하고, 대신 위자료와 재산분할에서 상대 배우자와 자녀를 더 강하게 보호하면 된다. 유책주의를 엄격히 지키면 당사자들이 상대의 잘못을 입증하려 들 뿐, 혼인관계 구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ㄴ씨 쪽 양소영 변호사는 “한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추구권과 생존권 침해로 연결된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이 보호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아직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지급 수준은 피해 배우자를 보호하기에 부족하다. 바람피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며 협박해 두려움에 떠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대법원의 유책주의 판례는 1965년부터 유지돼 왔다.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고 이혼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파탄주의 관점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혼인관계 파탄 책임을 반드시 한쪽에만 물을 수 없는데다, 재산분할제도 도입에 따라 이혼 때 여성이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줄기도 했기 때문이다. 양쪽 주장을 듣던 대법관들은 각 주장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박보영 대법관은 “파탄주의를 채택하면 혼인을 지키려고 노력한 배우자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실제 많은 어머니들이 노년을 함께 보내려고 배우자의 잘못을 용서하고 희생하면서 가정을 지켜왔는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ㄱ씨 쪽 참고인인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형식적으로 혼인관계가 유지돼도 상대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배우자와 자녀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면 이혼을 불허하는 규정을 둬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간 절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은 “이혼해도 자녀 부양 의무는 여전한데, 파탄된 상태라면 혼인의 껍데기가 유지될 필요가 있는가”라며, 유책주의 옹호론 쪽에 물었다. 이에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이혼에 대한 편견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명목상 혼인관계 유지만으로도 배우자와 자녀에게 주는 안정감이 크다. 파탄주의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이혼 때 배우자와 자녀 보호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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