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출범 7개월 만에 ‘거물급’ 무기중개상의 비리 혐의를 확인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막강한 영향력으로 한 사업에서 챙긴 수수료만 3000억원에 이르고, 해외로 빼돌린 돈이 1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돼 합수단의 로비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합수단은 1일 예비역 해군 중령으로 잠수함 도입 사업을 독점해온 정의승(76·사진)씨에 대해 무기중개료로 받은 3000억원 가운데 1000억여원을 국외로 빼돌려 은닉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국외재산도피·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씨가 잠수함 도입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청탁을 들어주고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안기석(64·예비역 중장) 전 해군 작전사령관을 구속 기소한 합수단은 정씨가 전·현직 군 간부들을 상대로 벌인 로비가 더 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합수단 수사 결과, 정씨는 해군이 독일 업체 하데베(HDW)와 엠테우(MTU)에서 1200t·1800t급 잠수함 및 엔진을 도입하도록 중개한 대가로 3000억원 가까운 중개수수료를 받아 이 가운데 1000여억원을 홍콩 등 외국에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해군 쪽 거물 무기중개상으로 유명하다. 해군사관학교 17기(1959년 입학) 출신으로 베트남에도 파병된 그는 군수 분야에 종사하다 1977년 예편해 독일 육·해상무기 엔진 제작사인 엠테우 한국지사장으로 근무했고, 83년 고향인 강원도 강릉시 학산리의 이름을 딴 학산실업을 설립해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독일’과 ‘해사’를 배경으로 활동 무대를 넓힌 그는 1993년 율곡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름이 군 외부에도 알려졌다. 당시 한국형 구축함 사업에 참여하려고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3억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해군 무기의 80% 이상을 독점 중개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해진 그는 율곡 비리 사건 뒤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내용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메모하고, 녹음을 우려해 목욕탕에서 사업 논의를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씨는 2004년 해군 인사 비리와 관련해 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 군검찰은 정씨 집을 압수수색해 손으로 쓴 ‘재산목록’을 확보했다고 한다. 조세회피처 등 여러 나라 은행 이름과 그곳에 보관된 현금성 자산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규모가 수천억원대라고 한다. 정씨는 2006년부터는 유비엠텍을 설립해 사업을 이어왔다. 합수단은 출범과 함께 정씨를 내사해 그가 빼돌린 재산이 여러 나라를 거친 정황을 포착하고 해당 국가에 사법공조를 요청해둔 상태다.
정씨의 군 수뇌부 로비는 최근 안기석 전 작전사령관이 구속되며 일부가 드러났다. 미국 언론 <블룸버그>는 2011년 10월 ‘독일 엠테우 아시아지사가 정씨에게 지급한 3990만유로(630억원)의 중개료가 뇌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씨가 현장실습교육 명목으로 한국군 관계자를 아시아 휴양지에 초대해 향응을 제공하고 고가의 선물을 줬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이 보도로 독일 엠테우 본사가 회계법인에 감사를 의뢰하는 등 계약 지속이 위태로워지자, 정씨는 안 전 사령관에게 부탁해 ‘현장실습교육은 긍정적 효과만 있었고 이와 다른 요소는 없었다’는 해군 감찰실장 명의의 문서를 건네받아 독일 쪽에 제출하기도 했다. 정씨는 이후 안 전 사령관에게 격려금과 고문료 명목으로 1억75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는데, 뇌물이 아닌 알선수재는 공여자 처벌 조항이 없어 안 전 사령관만 구속 기소됐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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