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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설프고 아귀 안 맞는 ‘간첩 김련희’의 행적

등록 2015-07-03 20:46수정 2015-07-04 11:40

국가정보원은 김련희씨가 2011년 9월 합동신문센터에 들어왔을 때 북송을 요청한 사실에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다만 김씨가 추후 남한 정착에 동의하는 진술서를 썼기 때문에 국정원이 김씨에게 강제로 남한 국적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3일 <한겨레>에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시흥시 소재 합동신문센터 전경. 국정원 제공
국가정보원은 김련희씨가 2011년 9월 합동신문센터에 들어왔을 때 북송을 요청한 사실에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다만 김씨가 추후 남한 정착에 동의하는 진술서를 썼기 때문에 국정원이 김씨에게 강제로 남한 국적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3일 <한겨레>에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시흥시 소재 합동신문센터 전경. 국정원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 김련희 수사, 어디까지 사실?
“경찰이 내게 ‘수사에 협조해주면 공소보류(검사가 범죄 혐의자의 범행 동기 및 정황 등을 참작해 공소 제기를 보류하는 것) 해주고 아파트도 새로 준다’고 해서 북한의 지령대로 탈북자 정보를 수집했다고 허위 자백했다.”

김련희씨의 이 주장은 기존의 입장을 뒤집는 것이다. 그는 검경 수사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탈북자 정보를 수집한 뒤 북에 건넸다고 스스로 인정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이를 유지했다. ‘김련희 사건’은 또 하나의 ‘탈북 간첩 허위자백 사건’이었을까.

왜 ‘공소보류’가 살길이라 생각했나

이 사건의 판결문과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김씨는 지난해 4월11일 ‘자백 진술서’를 경찰에게 건넸다. 김씨는 진술서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선양 북한영사관에 전화했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말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신원 자료와 브로커들의 북한 연락선을 알아보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썼다. 김씨는 진술서를 쓰기 이전에도 김씨를 담당하는 경북 경산경찰서 보안계 형사들에게 비슷한 취지의 진술을 반복해왔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에 대한 반감과 수사관들의 회유와 압박 등으로 허위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남한 당국이 나를 억류하는 것에 반감이 많았다. 경찰이 (나를 수사하느라) 헛수고 좀 해보라고 (북의) 지령을 받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어차피 나를 간첩으로 붙잡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간첩활동을 한 게 없기에) 내가 구속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당시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그를 비이성적인 선택으로 몰고 갔을 개연성도 있다. 김씨가 경찰에 자백할 즈음인 지난해 초 경산중앙병원 정신과는 김씨에 대해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 적응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어 3개월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또 김씨는 “송아무개 경북경찰청 보안수사1대 팀장(경위)이 집으로 계속 찾아와 공소보류 제도가 있다고 설득했다. 고의적인 간첩이면 죄질이 나빠 처벌받지만 북한이 시키니까 (북에 남은)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거면 정상참작해서 다 봐준다고 했다. 김현희(1987년 칼기 폭파범) 이야기도 하면서 ‘북한이 시켜서 한 거라고 인정하면 남한에서 용서해주고 잘살게 해준다고 저더러 잘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공소보류가 살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송 경위는 이에 대해 “김씨에게 공소보류 제도를 설명한 것은 맞지만 통상적인 과정일 뿐 거짓 진술을 회유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씨가 탈북자 정보를 수집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다방의 운전기사로 일하며 탈북자 여성 종업원들의 신상정보 17건을 파악했다. 다만, 검찰 공소장대로 김씨가 북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 것인지에 대해선 주장이 갈린다. 김씨가 선양 주재 북한영사관에 수차례 전화한 것은 확인됐지만 무슨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입증하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검경의 수사는 김씨의 자백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김씨가 정말 간첩이 맞다면 몇가지 풀어야 할 의문들이 있다. 북한 영사가 갑자기 남한에서 전화를 걸어온 여성에게 지령을 주었다는 것, 김련희씨가 정보원 전용 전화번호가 아닌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되는 영사관 대표 번호로 전화 걸었다는 것, 김련희씨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로 영사관에 전화 걸었다는 것, 김련희씨가 통상적인 국가안전보위부(국가정보원과 같은 정보기관) 요원 선발 과정을 거치지 않은 평범한 주부라는 것, 김씨가 자신을 관리하던 경산경찰서 보안계 형사들에게 ‘지령을 받고 있다’고 평소에도 자주 말해온 것 등이 일반적인 ‘간첩’과는 차이가 있다.

김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중국의 ‘이사장’이라 불리는 사업가로부터 선양의 북한 영사 전화번호를 건네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사업가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북한 영사의 지령을 대신 전달하거나 연락을 주선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김씨의 사촌 언니(중국 거주 조선족)는 기자와 만나 “북한 영사관 전화번호를 알려준 건 (이사장이 아닌) 나다. 련희가 어느 날 남한에서 전화를 걸어와 북한 영사관 전화번호를 문의했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2013년 7월2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 여자축구 경기가 열렸을 때 탈북자 정보가 담긴 유에스비(USB) 저장장치를 신원 불상의 북쪽 남성에게 건네줬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김씨가 경기장에 가기 전 자신을 담당하는 경산경찰서 보안계 형사들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지령을 완수하려는 간첩이 스스로 경찰에게 자신과 함께 목적 수행 장소에 가달라고 부탁한 셈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당시 경찰은 바쁜 시간을 이유로 이에 동의하지 않은 게 확인되는 등 김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었다. 또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한 탈북자 브로커 ㅇ씨의 정보를 추적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ㅇ씨는 김씨와 이미 잘 아는 사이였다. ㅇ씨는 “김련희는 내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함께 잘 지내보라며 탈북자 지인도 소개해준 적 있다. 김씨가 나를 추적하다 실패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거짓말하다 보니 헷갈릴 때 많았다”

김씨는 진술할 때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김씨는 2014년 9월1일 경찰 조사 때(2차 진술조서 작성)는 ‘2014년 6월22일 북한 영사에게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4주 뒤인 9월29일 경찰 조사 때(3차 진술조서 작성)는 ‘2014년 6월22일 북한 영사와 통화해 곧 구속될 거 같다고 말하니 (영사가) 곧 사람을 보낼 테니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거짓말을 하다 보니 헷갈릴 때가 많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으면 검사(조사관일 수도 있음)가 ‘그전에 조사할 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힌트를 주면 내가 대답을 이어가곤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를 간첩으로 의심해 경찰에 지난해 5월28일 신고한 탈북자 ㅁ씨가 있다. ㅁ씨는 김씨와의 통화 녹취록을 경찰에 제출했고 이는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입증 수사자료로 쓰였다. 지난달 24일 김씨를 만났다. ㅁ씨는 “김련희는 여러모로 어설퍼 보였다. 진짜 간첩이라면 자신이 간첩이라고 함부로 얘기할 리 없다. 내가 김련희를 신고하지 않으면 국정원이 나까지 간첩으로 오인할 거 같아 신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련희 사건’은 서울시공무원 간첩 사건, 여간첩 원정화 사건,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사건, 김일성대 출신 여간첩 사건, 탈북자 부부 간첩 사건 등 그간 <한겨레>가 추적 보도해온 일련의 사건들과 비슷한 점이 상당수 발견된다. 간첩으로 몰린 탈북자들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가중처벌 받는다’는 수사기관의 회유와 압박을 경험했고, 수사 당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고,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했다고 공통된 증언을 했다. 김련희씨 역시 정신과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 없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기에 허위자백을 했을 만한 정황이 있다. <한겨레>는 30년 이상 공안수사를 전담하다 퇴직한 전 보안수사대에게 관련 자료를 주면서 ‘김련희 사건’의 분석을 요청했다. 그는 “간첩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김련희와 간첩 사건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경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상당히 부풀려진 사건 같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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