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 뭉쳐 사건공유 ‘상생’
의뢰인은 수임료 낮출 수 있고
변호사는 협력·경쟁 함께 해
의뢰인은 수임료 낮출 수 있고
변호사는 협력·경쟁 함께 해
한국요양보호사협회 김영달(49) 회장은 지난 5월 지인의 소개로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청호의 남오연 변호사를 찾아갔다. 돌보던 이들이 숨지면 요양보호사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 등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아 법률상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법무법인 두곳에 속한 변호사 4명이 협회에 찾아왔다. 비용이 걱정됐다. 하지만 남 변호사는 한 법무법인과 상담한 비용만 받았다. 김 회장은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여러 변호사가 직접 찾아와 자문해줘 좋았다”고 했다.
이런 법률상담이 이뤄진 것은 남 변호사가 주축이 된 ‘럭션’을 통해서였다. ‘럭션’은 사건 공유를 위해 변호사 8명과 세무사 1명이 5월에 시작한 ‘공유변호사제’다. ‘빛을 내는 행동’이라는 뜻으로 만든 ‘럭션’은 변호사들이 혼자 처리하기 어렵거나 맡기 힘든 사건을 누리집의 공유 플랫폼에 올리고, 내부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춘다. 의뢰인이 동의하면 실명으로 올리지만, 대부분은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사건 개요만 올린다. 남 변호사는 “협회 내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자문해줘야 할 문제는 다양했다. 이 때문에 공유 플랫폼에 함께 상담을 갈 변호사가 없는지 물었다. 혼자서는 맡기 힘든 사건을 ‘공유’해서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들끼리 협력하면서도 수임 경쟁을 하는 구조인 ‘럭션’은 변호사 선임료를 낮추는 결과도 낳고 있다. 지난 5월 이혼 위기에 놓인 한 30대 여성은 남편과 부정행위를 한 여성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다. 형편이 좋지 않아 착수금으로 100만원밖에 낼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성공보수금은 40%를 주겠다고 했다. 이 내용이 ‘럭션’에 올라왔고, 글을 올린 지 하루도 안 돼 변호사 2명이 답글을 올렸다. 한 변호사는 착수금 100만원에 성공보수금 40%를 제안했고, 다른 변호사는 착수금은 같지만 성공보수금은 20%만 받겠다고 했다. 사건은 더 낮은 성공보수금을 제시한 변호사가 맡았다.
10년차인 남 변호사가 ‘럭션’을 만든 것은 ‘변호사 2만명 시대’에 법률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남 변호사는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는 변호사를 돈키호테에 비유했다. 그는 “돈키호테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지 않느냐. 변호사 수가 줄어들길 기대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이렇게 모인 변호사가 20여명이다. 남 변호사가 설득한 이들도 있고 입소문을 듣고 온 변호사도 있다. 이들은 각자 ‘회원제 법률자문 서비스’를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무료 법률자문도 해준다.
‘럭션’은 어려움을 겪는 새내기 변호사들에게도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여기 속해 있는 송강 변호사(변호사시험 3회)는 “취업이 힘들어 이력서를 수십번 내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취업하는 사람은 소수라 많은 수가 ‘비자발적 강제 개업’을 한다. 하지만 영업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개업하면 곧바로 어려움에 처한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사건을 공유하고 수임하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고 있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서울 서초동 한 건물에 있는 6.6㎡ 넓이의 ‘쪽방 변호사 사무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