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한겨레 신소영 기자
대법원장도 포함 ‘입김’ 커질 우려
대법관 3명과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 결정
“대법원장이 직접 위원장 맡는건
대법관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
대법관 3명과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 결정
“대법원장이 직접 위원장 맡는건
대법관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 소위원회’(소위)를 만들어 회부할 사건을 심의하기로 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더 신속하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대법원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장이 사건 심리에 관여를 자제해온 기존 틀을 깰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6일 “대법원장과, 대법원 소부 3개 소속 대법관 1명씩 총 4인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 소위원회’를 신설하고 여기에서 전원합의체 사건의 기본적 운영 방향과 대상 사건의 선정 및 공개변론 여부를 심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위 위원장은 대법원장이 상임으로 맡고, 다른 대법관들은 6개월 단위로 돌아가며 소위에 참여한다. 소는 13일 첫 회의를 연다.
지금까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가 배당받은 사건을 심리하다가 의견이 갈리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하거나,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해 전체 대법관들이 심리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심 대법관이 판단하면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겨왔다. 전원합의체에는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4명 중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한다.
새 제도에서는 주심 대법관이 정해지기 전이라도 대법관들이 상고이유서 등 기록을 사전 검토한 뒤 소위 심의 대상에 올린다. 소위는 심의를 통해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결정한다. 대법원은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큰 정책적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를 조기에 심의하고 적시에 심리가 이뤄지게 해 정책법원 기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소위에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기로 한 사건도 기존처럼 소부 심리 과정에서 전원합의체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구성원 중 1인이기도 한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최고 결정권자이지만 사건에 관해서는 ‘평등한’ 구성원이다. 지금까지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들만 재판장으로서 심리를 관장해왔다. 합의 과정에서도 의견을 먼저 내지 않고 맨 마지막에 다수의견을 따라간다. 즉 사건에 관해서는 ‘상징적 역할’이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소위가 설치되면 이제 개별 사건에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소위 위원장을 맡아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재판의 영역에서 원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전직 대법관은 소위가 시의적절한 판단을 하면 새 제도가 긍정적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건 대법관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고 본다”고 했다. 현 양승태 대법원장처럼 이미 대법관을 한 차례 역임한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는 게 통례이기 때문에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장이 위원장인 소위에서 전원합의체 회부에 반대한 사건을 나중에 소부가 다르게 판단하려면 부담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또 “소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 말지는 그 소부와 주심 대법관의 권한이기 때문에 위헌 논란이 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소위에서 대법관들이 대법원장 눈치를 본다는 것은 전원합의체 합의 과정에서도 대법관 12명이 재판장인 대법원장의 눈치를 본다는 건데,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소위 심사 전 전체 대법관들에게 어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리면 좋을지 의견을 수렴한다. 이를 바탕으로 심사하고, 회의 결과도 전체 대법관들과 공유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입김이 강화될 우려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관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제도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대법원이 선고한 불법체류자의 노조 설립 사건은 직전 주심이던 양창수 전 대법관이 재임 기간 6년 내내 캐비닛에 넣어뒀다가 후임자가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결론이 났다. 보수 성향 일색의 대법관 구성으로는 ‘입맛’에 맞는 사건들 중심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효은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소위를 구성한다고 해서 대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다. 사건을 신속히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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