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 ‘교통 약자의 이동권’ 보장
장애인단체 “국가 책임 안 물어 실망”
장애인단체 “국가 책임 안 물어 실망”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
시외버스나 광역버스에 휠체어 승강시설이 없어 장애인들은 법에 있는 기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는데, 법원이 처음으로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재판장 지영난)는 10일 뇌병변장애를 앓는 김아무개씨 등 5명이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 버스회사 2곳 등을 상대로 “저상버스를 도입해 승하차의 편의를 제공하라”며 낸 차별구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현재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시내버스에는 휠체어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저상버스가 다수 도입돼 있지만, 일반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는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다. 휠체어 승강 설비도 전무하다. 이에 장애인 단체는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라며 지난해 3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금호고속은 시외버스에, 명성운수는 시내버스 중 광역급행형, 직행좌석형, 좌석형 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며 버스회사 2곳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을 상대로 시외버스 노선에도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는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면서도 “휠체어 승강설비를 도입하려면 현실적인 수요, 재정적 여건 등을 예측해 설치 시기 및 범위 등의 결정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 구제조치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태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버스회사 2곳에 차별을 시정하라는 판결은 전에 비해 고무적이고 긍정적이지만,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 국가가 이 책임을 다할 때까지 소송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미국·영국은 모든 고속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100% 설치했다”며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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