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내곡동 ‘국정원 행킹 사건‘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국정원 들머리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 17일 국가정보원이 해킹 프로그램 도입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35개국 97개 기관이 이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나라가 없다.” “국정원의 정보역량이 이미 크게 훼손됐다.” “근거 없는 의혹으로 국정원을 매도하는 건 우리 안보를 약화시키는 자해행위다.” 야당과 언론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는 호통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누가 국정원의 정보역량을 훼손했는가? 전세계 해커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국가의 정보보안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지난 4년 동안 이탈리아 해커 집단에 ‘의지’해왔다.
해킹팀 대표는 지난 9일 “우리가 만든 해킹 프로그램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이제 이를 테러리스트나 약탈자가 사용할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누가 우리나라를 이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았는가?
이들은 지난 4년 동안 국정원의 요청으로 한국의 최첨단 기술에 대한 해킹을 시도해왔다. 국정원은 삼성 스마트폰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이를 “뚫어달라” 했고,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과 안랩의 ‘브이스리’(V3)도 무력화시키려 했다. 이런 정보기술이 이탈리아 해커들을 통해 어디로 전수됐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정원이 뿌린 스파이웨어나 악성 애플리케이션이 불특정 다수의 한국인들 사이에 퍼졌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국정원이 자국민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노출시키는 ‘슈퍼 전파자’ 구실을 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더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국정원은 지금이라도 상세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는 국가 안보를 위한 의무이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공교롭게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를 맡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994년 자신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해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 주도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 했다. 국가 안보와 국내 기업의 정보보호를 위해 국내 보안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맥락에서였다. 의혹 제기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치는 국정원의 행태는 적반하장에 다름 아니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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