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중회의실에 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청와대가 다음달 12일 임기를 마치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후임으로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한 것을 두고 법조계와 인권단체 등에서 부적절한 인선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는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 고위직이 대통령 임명직으로 직행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에 해가 된다고 우려한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보수 성향의 법조인들로 채워지면 소수자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 정권의 법관 줄 세우기 논란
서울중앙지법은 중요하고 민감한 정치인·기업인 사건이 몰리는 곳이다.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 심사를 통해 이런 사건들을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통제한다. 특히 법원장 자리는 고도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성호 내정자의 전임자들인 황찬현 감사원장과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중 곧바로 행정부 기관장으로 직행했다. 특히 황 감사원장은 서울중앙지법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심리하던 중 ‘영전’해 입길에 올랐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도 지난해 4월 차관급인 서울고법 부장판사 자리에서 행정부로 옮겼다.
이명박 정부 때는 김황식 대법관이 임기 도중 감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논란을 일으켰다. 사법부 내에서 더 이상 ‘승진’할 자리가 없는 대법관의 자리 이동도 문제가 됐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고위 법관이 장관급 이상 행정부 관료로 발탁되는 인사 패턴이 일반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는 “청와대가 현직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해 법관들을 줄 세우게 만드는 나쁜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도 “예전엔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이 다음에 어느 자리에 갈지를 신경 썼다면, 이젠 그 밑의 법관들까지 다음 자리를 의식하면서 일하게 되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인권위원들 줄줄이 법조인
법조인을 인권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을 두고 인권위원의 다양성이 후퇴됐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인권위원 11명 가운데 법조인 출신 또는 법학 전문가가 7명이다. 법조인 출신 인권위원장이 실정법 중심 사고를 벗어나 ‘인권 감수성’을 얼마나 보여줄지 의심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전직 인권위원은 “대법관 출신이 위원장을 맡는 인도 국가인권위 활동에 대해 국제사회가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인권위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와 같은 (보수적) 해석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권위 구성의 다양성을 강조해온 시민사회는 이번에도 청와대가 의견 수렴 없이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한다. 법인권사회연구소는 성명을 내어 “인권위가 사회적 다양성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강력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또다시 법조 출신을 임명해 국제 기준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인권위 직원은 “인권위의 독립성은 인선 절차에서부터 담보돼야 하는데, 이번에도 밀실에서 결정했다”며 아쉬워했다.
청와대는 6년 전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인권 문외한’으로 불리는 현병철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인권위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인권위원 인선 절차의 투명성과 다양성을 보완하라며 지난 2년 사이 세 번이나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다. 특히 지난 3월 말 세 번째 등급보류 심사결정 때는 ‘8월 임기가 만료되는 인권위원장의 임명 및 선출 과정에 다양한 사회계층이 참여하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할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받기도 했다.
이경미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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