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했는데 항소심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징역 4년으로 올려도 괜찮은 것일까? 이런 ‘고무줄 형량’에 대해 대법원이 “위법하지는 않지만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천지법 형사4단독 설충민 판사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혐의(도박개장) 등으로 기소된 최아무개씨와 홍아무개씨에게 “죄질이 가볍지 않고 집행유예 기간에 또 죄를 저질렀다”며 지난해 11월 각각 징역 10월,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인천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김수천)는 지난 2월 “두 사람의 형은 다소 가벼워 부당하다”며 최씨에게 징역 4년, 홍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별다른 증거조사나 피고인신문 없이 마무리된 항소심은 형량을 몇 배나 올렸지만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징역 10년 미만은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상고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은 1심 판단이 문제가 없는데도 항소심이 형량을 너무 올린 것은 위법하다며 상고했다. 보통 사건이라면 대법원은 볼 것도 없이 상고를 기각했겠지만, 이번에는 1·2심 형량 편차가 너무 크고 그 이유가 판결을 통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쟁점이 부각됐다.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이 사건을 부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신 대법관)는 23일 “항소심도 고유의 양형 재량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의 양형 판단과 원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기하거나 양형 이유에 관해 일일이 명시하지 않아도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최씨 등의 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1심과 양형 조건에 변화가 없고, 1심 양형이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다소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1심 판결을 파기해 별로 차이가 없는 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편 박보영·김신·권순일 대법관은 “1심 양형 판단을 뒤집을 사정이 없는데도 파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은 항소심 양형 판단 및 파기 이유 설시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취지여서 적법한 상고 이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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