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법치주의 뿌리 흔들 수 있어” 약정 무효 판결
전관예우·과다수임료 폐단 줄어들 듯…변협 반발
전관예우·과다수임료 폐단 줄어들 듯…변협 반발
대법원이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착수금을 받은 뒤 결과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는 변호사업계의 오랜 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구속이나 실형을 면하게 해주는 대가로 과도한 수임료를 받는 관행 및 이와 연관된 전관예우 폐단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변호사 단체는 반발하고 나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허아무개씨가 조아무개 변호사를 상대로 ‘성공보수 1억원이 지나치게 많으니 돌려달라’고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위반되므로 무효”라며 4000만원을 돌려주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법원은 그동안 모든 민형사 사건 성공보수 약정에 관한 소송에서 원칙적으로 이를 유효하다고 판단해왔다. 다만 지나치게 부당한 경우만 예외적으로 무효로 보고 일부를 돌려주라고 해왔는데, 이번에 판례를 바꿨다. 대법원은 선고일인 23일부터 체결된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모두 무효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형사사법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엄정하고 공정하게 운용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수사·재판 결과를 금전 대가와 결부시켜,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또 “구속영장 기각이나 무죄 같은 수사·재판 결과를 대가로 금전을 주고받는다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정당한 결과마저도 부당한 영향력의 성과처럼 보이게 만들어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미국과 유럽 등에는 없는 관행이다. 한국에서도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폐지 문제를 논의하고, 17·18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대법원은 입법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법제도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민일영·고영한·김소영·권순일 대법관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형사사건 성공보수가 공익을 훼손한다고 보고 금지하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변호사 보수 방식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선돼 선진적 법률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성명을 내어 “성공보수 약정 전부를 반사회적 행위로 보아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무리한 형식논리적 해석”이라며 “사법 불신의 원인을 잘못 파악한 판결을 조속히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대한변협은 회원들을 상대로 긴급 설문조사를 해 2920명에게 답변을 받았는데, 판결을 ‘전적으로 반대’(54.1%)하거나 ‘대체로 부정’(26%)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