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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살인범 몰려 10년 옥살이한 ‘소년’ “난 죽이지 않았어요”

등록 2015-07-24 19:41수정 2015-07-25 10:05

최근호.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최근호.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소년 최근호’의 15년

익산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소년 최근호’의 15년
묻는다.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하면 그것은 모두 진실일까. 다른 정황증거와 아귀가 맞지 않아도 유죄의 증거로 삼아도 되는 걸까. 수사기관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더 문제인 건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2000년 전북 익산시에서 한 40대 택시기사가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열다섯살 소년이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 모두 소년을 범인으로 확정했다. 소년은 감옥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 소년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03년부터 유력한 진범 용의자가 드러났지만 무시당해왔다. 어른이 되어 교도소 문을 나선 소년은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한다. 광주고등법원은 지난달 22일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개시한다고 결정했고, 검찰이 항고함으로써 대법원의 결정을 남겨두고 있다. 이른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취재했다. 어른이 된 최근호(가명·30)씨를 만났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도 범인이라고 허위 자백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진범이 따로 있다면 공소시효는 다음달 9일까지다. 국회는 24일 본회의를 열어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이 다음달 9일 전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대통령이 공포하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난 죽이지 않았어요…진범과 한번 만나고 싶어요”

▶ “자백만큼 뿌리 깊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증거는 없다.” 1986년 미국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의 말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에선 실상 자백을 ‘증거의 왕’으로 대접합니다. 가정해봅니다.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어두운 곳에 갇혀, 범인이라고 폭행당한다면, 그래도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살인범으로 몰려 수형생활까지 마친 최근호(가명·30)씨를 만났습니다.

23일 오후 전북 익산시 갈산동 옛 익산경찰서 건물 하늘 위의 먹장구름은 쉴새없이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폐허처럼 방치된 건물 내부의 음습한 기운이 덮쳤다. 지하로 이어지는 어두컴컴한 계단에 발을 디디며 거미줄 몇 개를 끊었다. ‘형사계’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을 지나 왼쪽으로 돌았다. 숙직실로 보이는 작은 방이 있었다.

익산경찰서는 2003년 모현동으로 이전했다. 벽에서 떨어진 시멘트 조각들과 어지러이 꼬인 전선들이 세 평(9.92㎡) 남짓한 방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구석진 지하 방에서 소리를 질러도 외부에선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15년 전 열다섯살 소년이 잡혀 들어왔다. 혐의는 ‘택시기사 살인’이었다. 이 방에서 한 소년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최근호씨가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옛 익산경찰서의 지하 방. 허재현 기자
최근호씨가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옛 익산경찰서의 지하 방. 허재현 기자
2000년 8월13일 자정께. 소년은 익산역에서 내려 익산경찰서 형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내려오라는 형사들의 연락을 받은 터였다. 소년은 익산에 있다가 11일 천안에 올라가 있었다.

“저 도착했어요.”

전화를 받고 온 형사들은 소년을 경찰서가 아닌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형사들은 소년을 때리기 시작했다.

“네가 죽였지?”

소년은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네. 제가 죽였어요.”

이 말이 가져올 파장을 소년은 가늠하지 못했다. 지금은 청년이 된 최근호(가명·30)씨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다.

이른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하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열다섯살 소년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에 회부됐다. 1심 재판 때 소년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2001년 2월2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류연만 제1형사부장판사)은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광주고등법원(김진권 제1형사부장판사)의 2심 재판 때 소년은 범행을 인정했다. 형이 줄어 10년형이 확정됐다. 소년은 2010년 가석방될 때까지 감옥에서 살았다. 열다섯살에 감옥을 간 근호씨는 스물다섯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최씨는 지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최씨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3년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한 사람이 나타났다가 이를 번복함으로써 없던 일이 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수사 시스템의 문제점과 오류를 정정하는 데 극히 소극적인 사법당국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과연 이 사건을 한 소년의 불행한 일화로 넘기고 말아도 될까.

공소시효 만료 보름 앞…시효 폐지될 수도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일지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일지
23일 오후 최근호씨를 전라북도 한 소도시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결혼도 했고 지금은 한 아이의 아빠다. 첫돌도 안 지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함께 나왔다. 아기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빠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배 위에 올라탄다고 엄마 이아무개(27)씨가 자랑한다. 최씨는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고 했다. 아기의 재롱이 그나마 위안이다. 최씨의 얼굴에 피곤기가 그득하다.

“힘들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저를 알았는지 자꾸 전화하고 문자 보내요. 너무 힘들어서 한 며칠 휴대전화 끄고 낚시 다녀왔어요.”

최씨의 어머니(50)가 맞은편 의자에서 아들을 안쓰럽게 지켜봤다. 최씨의 사연은 지난 18일 에스비에스(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되면서 유명해졌다. 2013년 4월 <한겨레21>은 그의 사연을 자세히 전한 바 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범이 최씨가 아니라면, 진짜 범인이 처벌받을 수 있는 공소시효가 다음달 9일 만료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익산경찰서 누리집은 연일 항의글로 도배됐다. 국민적 관심이 최씨는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버겁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살인죄에 적용되는 공소시효가 폐지돼 대통령 공포만 다음달 9일 전에 이뤄지면 진짜 범인을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은 더 확보된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7분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에서 일어났다.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택시기사(42)가 어깨·가슴 등 10여군데를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사건 발생 사흘 뒤 익산경찰서는 사건 현장 인근 다방에서 배달 일을 하던 최근호군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은 당시 최군이 자백했다고 밝혔다. 오토바이 운전 도중 택시기사와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었고, 최군이 격분해 택시기사를 칼로 찔렀다는 것이다. 최군은 진술 도중 몇 번 자백을 번복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범행을 시인했다. 재판을 받았고 감옥에 갇혔다.

보슬비가 내리던 23일 오후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를 택시 한대가 지나가고 있다. 2000년 8월10일 새벽에도 이곳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사진 왼쪽 아랫부분)에서 한 택시기사가 살해당했다. 최근호(가명)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범인이 뛰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익산경찰서는 최씨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허재현 기자 khan@hani.co.kr
보슬비가 내리던 23일 오후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를 택시 한대가 지나가고 있다. 2000년 8월10일 새벽에도 이곳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사진 왼쪽 아랫부분)에서 한 택시기사가 살해당했다. 최근호(가명)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범인이 뛰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익산경찰서는 최씨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허재현 기자 khan@hani.co.kr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뜻밖의 첩보를 입수한 군산경찰서는 2003년 6월5일 ‘또 다른 진범’ 김일병(가명·당시 22살)씨를 붙잡았다. 김씨도 최군처럼 순순히 자백했다.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택시기사를 위협하다 우발적으로 칼로 찔렀다는 것이다. 군산경찰서 형사계 황상만 당시 강력1반장(61·2014년 퇴직)은 검찰에 김씨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과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구속지휘 의견서를 거듭 올렸지만, 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자백 말고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게 당시 수사를 지휘한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담당 정종화 검사)의 의견이었다.

경찰에서 풀려난 김씨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친구의 범행을 나도 알고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던 김씨의 동갑내기 친구 임아무개씨도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고는 김씨와 임씨는 진술을 뒤집었다. 그냥 부모님을 놀라게 해서 관심을 받으려고 한 장난이었다는 것이었다. 경찰 출석도 거부했다. 황 반장은 1년 동안 사건을 추적했지만 김씨의 죄를 입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검찰은 2006년 재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종결될 뻔했던 사건은 되살아났다. 사법 피해자를 돕는 박준영(41) 변호사가 우연한 경로로 최군의 사건을 접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목격자들을 찾아냈다. 최군이 무죄이고 김씨가 범인임을 추정하게 하는 증거들이 추가로 나타났다. 2013년 최근호씨는 법원에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고법은 사건을 재검토한 끝에 지난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그러나 검찰이 항고함으로써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최씨를 만나자마자 물었다.

15년 전 익산 택시기사 살해사건
허위자백으로 10년 옥살이한 소년
진범 추정 용의자는 풀려나왔다
최근 관련보도 잇따라 나오며
여론은 재심확정 여부 주목한다

극도로 불우했던 가정형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다방 배달일 하다 사건현장 목격
형사들은 무작정 그를 때렸다
무력 상태서 회유하고 기망했다

“잠 안 재우고 사흘 동안 맞았다”

-범인이 아니라면서 왜 그때는 범인이라고 스스로 자백했나요?

“그건 (폭행을) 안 당해본 사람이니까 그렇게 묻는 거예요. 저는 지금 그 순간이 다시 와도 아마 제가 택시기사 죽였다고 자백할 거예요. 아무도 저를 믿어주지 않고 그렇게 경찰에게 폭행당한다면…. 그 지하실 방은 정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공포심이 생겨요. 누구 하나 여기서 맞아 죽어도 모르겠구나 그 생각뿐.”

-어디서 어떻게 맞았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보세요.

“형사계 사무실이 건물 지하 1층에 있어요. 책상에 앉아서 조사받다가 제가 범행을 부인하면 형사가 숙직실로 저를 데리고 들어가요. 거기서 맞는 거예요. 안 보이는 곳만. 발바닥이나 허벅지.”

-뭘로 때렸어요?

“경찰봉이나 걸레 자루 같은 걸로요. 팔은 뒤에서 한 사람이 잡고 있고요. 의자 뒤에 이렇게 뒤로 손 해가지고.”

-묶었다는 거예요?

“포승이 항상 묶여 있으니까요. 그런 것도 힘들지만 최고 힘든 게 머리 박고 있는 거, 자기네가 힘들면 좀 쉬다 하자고 하면서 한쪽 벽에 가서 머리 박게 해요. 그리고 잠 안 자는 거. 그게 제일 힘듭니다. 꾸벅꾸벅 졸면 때리고, 범행 부인하면 때리고.”

-며칠 안 잤어요?

“한 사흘 정도.”

최씨(오른쪽)가 허재현 기자(왼쪽)와 23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최씨(오른쪽)가 허재현 기자(왼쪽)와 23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최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익산경찰서는 불법 수사를 벌였다. 형법 125조는 경찰, 검찰 등 수사관이 형사 피의자를 폭행하거나 가혹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씨의 어머니도 아들이 얻어맞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애가 붙잡혀 간 지 사흘째인가 면회를 갔는데 내게 하고 싶다는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형사계 안에 그 방이 있었어요. 애가 하는 얘기가 ‘엄마, 진짜 나는 안 그랬는데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를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막 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형사들에게 큰소리를 쳤어요. 왜 우리 아들 말을 안 믿어주냐고. 형사 한 분이 애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방에서 때리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쿵쿵’ 하는 소리. 애가 좀 있다 나오는데 금세 얼굴 같은 데가 뻘거니 저기해져 있고. 그 뒤부터 아들 면회를 안 시켜주는 거예요.”

최씨만 맞았다고 주장한 게 아니었다. 당시 최군이 붙잡혀 오기 전 최군의 친구들이 익산경찰서의 수사를 받았다. 최군의 선배 ㄱ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경찰서 지하 1층 방에서 형사에게 입술이 터질 정도로 주먹으로 맞았다. 몽타주를 보여주면서 내가 진범이랑 똑같이 생겼다며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선배 ㄴ씨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최군과 ㄱ씨·ㄴ씨가 폭행당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0대 아이들은 증거사진을 찍어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왔을 때 왜 형사에게 맞았다고 말을 안 했어요?

“형사들이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 눈치 보여서.”

-재판 시작하기 직전 국선변호인이 왔잖아요. 왜 사실대로 말을 안 했어요?

“말했죠. 하지만 제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검사에게는 왜 경찰에게 맞아서 허위자백했다고 말 안 했어요?

“그때는 완전히 그냥 뭐 제가 (살인)했다는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말을 해도 믿어주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때는 그냥 그렇게….”

-열다섯살이면 비록 미성년자이지만, 맞으면서 불합리하다고 느꼈을 텐데요?

“진짜 무서웠어요. 긍까. 여기서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를 거 같았어요. ‘내가 왜 맞아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할 틈도 안 나요.”

-미란다 원칙 같은 거 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없었어요.”

-들은 게 기억 안 나는 거 아니에요?

“정확히 기억나요. 없었어요. 하도 때리니까 제가 여관에서 진술서 써줬는데 바로 반장이 ‘야 됐어. 수갑 채워’ 이렇게 말한 게 다였어요.”

-1심 재판 때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2심 때는 왜 인정했지요?

“1심 때 15년형을 받았는데 변호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더 이상 여기서 부인해봤자 어차피 형은 확정이 됐는데 조금이라도 (감옥에서) 덜 살아야 되지 않겠냐? 변호사님이 이제 설득을 하셔가지고 형량이라도 줄여 보려고.”

“저는 지금 그 순간 다시 와도
제가 죽였다고 자백할 거예요
아무도 저를 믿어주지 않고
그렇게 또 폭행을 당한다면…
그 방은 정말 공포심 생겨요”

감옥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정비·배관·용접 등 자격증 땄다
출소 뒤 범죄자 취급에 부적응
지금은 결혼해 비교적 안정된 삶
진범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단다

모순된 진술, 허위자백의 가능성

최군의 성장 환경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둘렀다. 최군이 다섯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최군은 아버지와 함께 살다 아홉살 때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최군이 열세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다시 최군을 데려왔지만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최군이 열네살 때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최군을 보살폈지만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하며 어렵게 살았다. 최군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일을 했다. 2000년 8월의 ‘그날’도 열다섯 최군은 익산시 한 다방의 배달 일을 하던 중이었다.

최군의 이러한 성장 환경과 폭력적인 수사 방식이 허위자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2013년 최씨의 인지능력 검사와 심층면담을 진행한 뒤 “최군이 조사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완전히 없진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조사 때 폭력을 동원했다면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최군이 따라갔을 수 있다”는 의견서를 광주고법에 냈다.

미국에서 1974년 개발된 ‘리드(Reid) 기법’이라는 심리 신문 기법이 있다. 피의자는 고립된 상태로 신문을 받는다.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를 수사관은 무시한다. 아무리 결백하다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 피의자는 극도의 무력함에 빠진다. 이때 수사관은 ‘자비의 기술’을 꺼내든다. 범행을 시인하면 선처하겠다는 식으로 회유한다. 또는 피의자를 기망한다. ‘범행 목격자가 있다’고 거짓말하기도 한다. 피의자는 허위자백 외에는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리처드 레오, <허위자백과 오판>) 우리나라의 검경 수사관 교육, 연수 때에도 리드 기법이 전수된다는 게 일선 경찰들의 말이다.

-혹시 수사에 협조해주면 선처해준다거나 그런 제안 받은 적 있어요?

“반장이 그러더라고요. 저는 소년원으로 보내질 거고 그러면 2년 정도 있을 거니까 군대 다녀온 셈 치라고요.”(최씨)

“형사 반장이라는 분이 저한테 그랬어요. 근호가 자꾸 진술을 번복하는데 어차피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들어가 살아도 얼마 안 살 것이니까 엄마도 아닌 걸 맞다고 자꾸 하시지 마시고 근호를 설득시켜서 그냥 사실대로 인정하게끔 이야기를 하라고 그러는 거예요.”(어머니)

최씨는 정말 허위자백을 한 것일까?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학계의 연구 결과는 국내에서 의외로 허위자백이 많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상준 서울고법 판사가 2013년 쓴 논문 ‘무죄 판결과 법관의 사실 인정에 관한 연구’를 보면, 1995년부터 2012년 8월까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540건의 사건 중 180건(31.5%)이 피고인 또는 공범의 허위자백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됐다. 1년에 10건 정도씩이다. 또한 중범죄일수록 형이 무거워서 허위자백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통계도 있다.

최씨가 허위자백을 했는지 알아보려면, 그의 수사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위자백을 했다면 자백에 의존한 수사 기록에서 여러 가지 모순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박준영 변호사는 피해자가 몬 택시의 운행기록(태코미터)에 주목한다. 2013년 3월 대한문서감정원 감정서와 피해자 택시회사 설명을 종합하면, 택시 정차 시점(새벽 2시8분) 이후에 범행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군은 사건 당시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 중이었다. 새벽 △1시56분58초~1시59분12초 △2시5분24초~2시5분39초 △2시9분11초~2시10분40초 △2시11분7초~2시11분25초에 통화했다. 택시의 운행기록과 최군의 통화기록을 종합해보면 모든 범죄행위가 1분10초 만에 이루어져야 한다.

목격자도 새로 나타났다. 당시 현장 주변에 있었던 최아무개씨는 광주고법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 “택시기사가 숨질 때를 전후해 오토바이 운전자와 다투는 모습은 없었다”고 밝혔다. 익산경찰서의 수사 결과 택시에서 최군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에 쓰였다는 칼과 최군의 옷 어디에서도 피해자의 혈흔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의 부검 결과(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김윤신 교수 담당)도 최군의 진술보다는 2003년 재수사 때 범인이라고 자백했던 (비록 다시 자백을 뒤집었지만) 김씨의 진술 내용에 가까웠다.

피의자 신문조서의 최군 진술도 오락가락했다. 1차 조사 때(2000년 8월13일)는 ‘택시기사가 택시에서 내려 멱살잡이를 했다’고 했으나, 4차 조사 때(2000년 8월19일)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멱살잡이했다’고 최군은 진술했다. 1차 조사 때는 범행 도구를 ‘직접 쇠창살을 연마해 만든 칼’이라고 진술했으나 4차 조사 때는 ‘다방 주방에 있는 식칼’이라고 진술했다. 1차 조사 때는 ‘칼을 하수구에 버렸다’고 했으나 4차 조사 때는 ‘다방에 다시 갖다 두었다’고 바꿔 진술했다.

물론 경찰도 최씨를 범인으로 의심했을 만한 정황은 있었다. 최군은 원래 살인사건의 목격자였다. 2000년 8월10일 새벽 사건 현장을 지나다 평소 안면이 있던 경찰에게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봤다고 말한 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8월11일 최군이 선배들과 충남 천안으로 가버리자, 경찰은 최군이 도피했다고 의심했다.

-1심 때 15년형 선고받고 심정이 어땠어요?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 선고 받고 막 대기실 들어가서 멍하니 앉아 울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사형 (선고) 받으신 분이 있었는데 제게 와서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그렇게 얘기해주셨어요.”

2003년 군산경찰서는 왜 이 사건의 결과를 뒤집지 못했을까. 자신이 실제 범인이라고 자백했던 김씨와 친구 임씨의 진술은 자연스러웠다. 피해자 부검 결과와 목격자 진술 등과 아귀도 맞았다. 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자세한 내용, 범행 뒤 칼에 묻어 있던 피해자 살점(비계)의 존재까지 이들은 진술했다.

황 반장의 ‘좌천’

당시 군산경찰서 강력1반장이었던 황상만씨를 24일 군산에서 만났다. 황씨는 검찰이 사실상 수사 지휘를 포기했고 경찰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아직도 김씨가 범인이라고 확신해요. 피의자 진술 때 녹음을 다 했어요. 어떤 강요도 없었고 태연하게 진술했어요. 그런데 검사가 김씨를 풀어준 뒤 김씨의 태도가 돌변했어요. 정신병원에 입원한 건 자작극이라고 봐요. 친구 둘이서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 날짜도 똑같아요. 정신질환자 둘이 어떻게 그렇게 한날한시 같이 아프기 시작해 낫는 시점까지 똑같을 수 있지요? 검찰이 대체 왜 그랬을까요?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2000년 당시 검찰의 수사 지휘, 그리고 죄 없는 애를 15년 선고한 법원이 다 망신당하게 생겼으니까?”

황 반장은 2004년 지구대로 발령났다. 사실상 ‘좌천’이었다. 지난해 퇴직할 때까지 단 한번도 수사부서로 배치받지 못했다. 검찰은 2006년 김씨에 대해 ‘무혐의’로 처리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이때 최군은 전주지검 군산지청 검사실에 불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김씨를 만났다. 검사가 마지막으로 대질신문이라도 하려 했던 것일까. 그러나 최군이 맞닥뜨린 상황은 달랐다.

“가보니까 진범이라는 사람(김씨)이 앉아 있었어요. 검사가 걔한데 그러는 거예요. ‘너 진짜 안 했지? 그런데 왜 했다고 그랬어?’라고 그러니까 걔는 ‘부모님 이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전 옆에서 황당했지요. 그래서 막 제가 욕을 하고 그랬어요. 제가 검사한테도 막 뭐라 하면서 욕설도 하면서 그런 식으로 사람 차별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게 그 사건 끝이에요.”

2006년 최군은 어느덧 스물한살 성인이 되어 있었다. 감옥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야 했다. 자격증 공부를 했다. 자동차 정비, 건축 배관, 용접, 선반, 캐드 자격증까지 땄다. 어차피 정해진 형량은 채워야 나올 수 있으니 미래를 대비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0년 출소 뒤 최씨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게 꼭 살인범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직장에 다녀도 동료들이 슬슬 피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약 먹고 자살 기도도 했어요. 새벽에 병원 실려가서 살아났지만.”

최씨는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직장에 다니며 어머니를 모시고 부인과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는 꼭 진범으로 추정되는 김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몇년 전부터 그 사람이 어디 살고 있는 것까지 다 알아뒀었어요. 하지만 안 찾아갔어요. 찾아가면 뭐하겠어요. 복수할 것도 아니고. 다만 얼굴을 한번 보고는 싶어요. 저한테 뭐라고 말할지 한번 듣고 싶어요.”

23일 익산에 있는 김씨의 회사를 찾아갔다. 약촌오거리에서 6㎞ 떨어진 업체였다. 사무실 동료들은 김씨가 연락 두절 상태라고 말했다. 보름 전쯤 필리핀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의 외삼촌은 한 지방도시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김씨의 외삼촌은 기자에게 “가족끼리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 더 얘기할 게 없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강력한 용의자로 언론에 의해 떠올랐지만, 잠적한 채 아무런 대응이 없다. 황상만 전 반장은 “공소시효 만료일만 기다리는 범인의 도피 행각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감옥서 나와 갚아야 할 1억4천만원

진범은 법정에서 가려지는 게 옳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김씨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살인범으로 낙인이 찍힌 열다섯살 최근호군에 대한 수사가 여러모로 공정치 못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은 최군만 하지 않았다. 최군을 수사한 경찰들은 범인 검거 공로로 포상까지 받은 기록이 있다. 반면 10년 감옥살이 끝에 나온 최씨는 1억4천만원을 근로복지공단에 물어주게 생겼다. 2001년 근로복지공단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지급한 산업재해보상보험금 4천여만원을 물어내라며 그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10년간 이자가 붙어 구상금은 1억4천만원이 되었다.

최씨는 최근 영화 <7번방의 기적>, <하모니>처럼 교도소 재소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저는 진범이 처벌받는 것에는 큰 관심 없어요. 김씨는 제 인생에서 없는 사람 취급 하고 싶어요. 다만 명예회복은 하고 싶어요. 제 아이가 살인범의 자식이 되게 할 순 없어요. 국가가 잘못한 거예요.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잡지 않은 거잖아요. 얼른 제 사건 재심이 이뤄지길 바라요.”

최씨는 아직까지 익산시 약촌오거리는 의식적으로 피해다닌다. 당시 익산경찰서 수사 책임자였던 이아무개 경위는 24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최군이 아르바이트하던 다방의 업주에게 맞았다고 하길래 업주를 처벌했을 정도로 자식같이 잘 챙겨줬다. 왜 우리한테 맞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전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과거에 감찰을 벌였지만 폭행 수사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현재도 재감찰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관계자는 “당시 수사가 정확하게 진행됐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재수사와 관련해선 어떤 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익산/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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