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장애인 등 재산관리 돕는 ‘성년후견인제 2돌’
유선우(54)씨는 지난해 3월 아무런 인연이 없던 지적장애 2급 김영민(가명·25)씨의 후견인이 됐다. 지난해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홀로 남겨진 김씨가 직업재활센터에서 간단한 포장 업무를 하며 한 달에 버는 돈은 50여만원.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1억여원짜리 빌라도 한 채 있는데, 혼자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김씨가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씨는 법원에 후견인 지정을 신청했고, 사정을 접한 유씨는 무보수로 한정후견인이 되기로 했다. 자신 또한 지적장애 2급 딸을 둔 유씨는 “우리 아이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면 장애인들이 퇴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유씨는 전문기관에서 후견인 교육을 받고, 김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도왔다.
시행 뒤 3자 지정은 15%에 그쳐
친족 후견인이 재산 빼돌리는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법·제도 보완해야 치매 환자나 장애인 등에게 후견인을 연결해줘 사회생활과 재산 관리를 돕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올해 7월로 시행 두 돌을 맞았다. 과거에도 ‘심신 상실’ 또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라는 판정을 받은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는 친인척을 후견인으로 지정해 재산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성년후견인 제도에서는 김씨처럼 제3자를 후견인으로 둘 수 있게 됐다. 후견인 감독 업무는 친족회가 아니라 법원이 맡는다. 서울가정법원의 통계를 보면, 2013년 7월 이후 올해 5월까지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된 이는 모두 2400명, 이 가운데 14.8%(354명)는 유씨처럼 제3자 후견인이다.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후견인은 돌봄이 필요한 피후견인을 잘 아는 가족이 맡는 게 제일 좋지만, 가족이 없거나 가족 간 분쟁이 생기면 제3자가 맡는 게 낫다”고 했다. 가족 간 분쟁은 피후견인의 재산이 많은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10억원대 자산이 있는 나아무개(53)씨가 2013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지자, 아들이 상가 임대차 계약을 대신 하겠다며 후견인 지정을 신청했다. 이에 동생이 “오빠를 믿을 수 없다”며 반발했고, 법원은 지난해 8월 제3자인 변호사를 나씨의 후견인으로 선정했다. 피후견인 조사를 담당하는 황해순 서울가정법원 조사관은 “우리나라는 재산을 가족이 공동 소유한다는 인식이 강해 친족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본인 명의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성년후견인 제도의 목적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잘 보존해 그 재산이 본인의 복리후생에 쓰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더 뿌리내리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친족 후견인이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김태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친족 후견인이 재산을 가로챘을 경우 친족상도례에 따라 직계혈족·배우자·동거가족은 형이 면제되고, 나머지 친족은 고소가 있을 경우에만 처벌된다. 성년후견인 제도에서 친족을 처벌할 수 있는 예외를 두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우 판사는 “지난 4월 회계사와 세무사 등 50여명을 선임해 체계적으로 (피후견인들) 재산 관리를 감독하고 있다. 피후견인의 재산을 악의적으로 빼돌린 경우가 발견되면 고발도 검토할 생각”이라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친족 후견인이 재산 빼돌리는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법·제도 보완해야 치매 환자나 장애인 등에게 후견인을 연결해줘 사회생활과 재산 관리를 돕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올해 7월로 시행 두 돌을 맞았다. 과거에도 ‘심신 상실’ 또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라는 판정을 받은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는 친인척을 후견인으로 지정해 재산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성년후견인 제도에서는 김씨처럼 제3자를 후견인으로 둘 수 있게 됐다. 후견인 감독 업무는 친족회가 아니라 법원이 맡는다. 서울가정법원의 통계를 보면, 2013년 7월 이후 올해 5월까지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된 이는 모두 2400명, 이 가운데 14.8%(354명)는 유씨처럼 제3자 후견인이다.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후견인은 돌봄이 필요한 피후견인을 잘 아는 가족이 맡는 게 제일 좋지만, 가족이 없거나 가족 간 분쟁이 생기면 제3자가 맡는 게 낫다”고 했다. 가족 간 분쟁은 피후견인의 재산이 많은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10억원대 자산이 있는 나아무개(53)씨가 2013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지자, 아들이 상가 임대차 계약을 대신 하겠다며 후견인 지정을 신청했다. 이에 동생이 “오빠를 믿을 수 없다”며 반발했고, 법원은 지난해 8월 제3자인 변호사를 나씨의 후견인으로 선정했다. 피후견인 조사를 담당하는 황해순 서울가정법원 조사관은 “우리나라는 재산을 가족이 공동 소유한다는 인식이 강해 친족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본인 명의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성년후견인 제도의 목적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잘 보존해 그 재산이 본인의 복리후생에 쓰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더 뿌리내리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친족 후견인이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김태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친족 후견인이 재산을 가로챘을 경우 친족상도례에 따라 직계혈족·배우자·동거가족은 형이 면제되고, 나머지 친족은 고소가 있을 경우에만 처벌된다. 성년후견인 제도에서 친족을 처벌할 수 있는 예외를 두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우 판사는 “지난 4월 회계사와 세무사 등 50여명을 선임해 체계적으로 (피후견인들) 재산 관리를 감독하고 있다. 피후견인의 재산을 악의적으로 빼돌린 경우가 발견되면 고발도 검토할 생각”이라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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