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한겨레 자료사진
컴퓨터 내·외장 디스크 등만 포함
‘사실상 컴퓨터’ 스마트폰 빼 논란
“다른 사람과 통신내용까지 담겨
더 엄격히 제한할 필요” 지적 나와
‘사실상 컴퓨터’ 스마트폰 빼 논란
“다른 사람과 통신내용까지 담겨
더 엄격히 제한할 필요” 지적 나와
대법원이 최근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는 결정을 내놨지만, ‘들고 다니는 컴퓨터’인 스마트폰에는 적용되지 않는 판례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 실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인데, 대법관들이 기술 진보에 둔감한 결과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6일 “저장매체에 있는 디지털 정보의 추출·복제·분석 전 과정에 피의자 쪽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하며, 이런 절차에서 위반 정도가 크면 압수수색 전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례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압수수색에 대한 판단이다. 스마트폰 압수수색은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통신이 주목적인) 스마트폰은 일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이 판례는 내·외장 하드디스크 및 유에스비 이동식 저장장치 압수수색에 대한 기준이고 스마트폰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선 법원에서는 스마트폰 압수수색영장 발부 때 압수 범위나 방법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양한 자료를 저장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달리 스마트폰은 통신기기로 보기 때문이고, 그 자체가 범죄 도구로 쓰일 수 있어 통째로 압수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통화 기능뿐 아니라 문서 작성·보관·전송 기능을 다 갖고 있다. 사실상 휴대용 컴퓨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스마트폰의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과 관련해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사기관이 신속한 수사를 명분으로 스마트폰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는 경우가 많은데, 혐의와 무관한 정보까지 무분별하게 수집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 변호사는 이런 관행에 대해 “혐의와 무관한 정보를 확보한 뒤 자백을 받기 위해 압박하는 용도로 쓸 수 있다. 압수수색 범위나 방법을 제한하지 않으면 별건 수사,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땅콩 회항’ 논란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관련한 한진그룹 쪽의 구치소 청탁 혐의 수사도,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압수한 한진 서용원 대표의 스마트폰에서 단서가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별건 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달부터 디지털 저장매체 압수수색영장 발부 때 압수 범위를 제한하고 피의자 참관권을 강화하는 개선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맹준영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는 “스마트폰은 하드디스크 압수와 동일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특수성이 있어 압수 범위나 방법을 어떻게 제한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하드디스크는 개인이 작업한 자료만 보관돼 있지만 스마트폰은 다른 사람과의 통신 내용까지 저장돼 있어 압수수색 범위를 더 엄격히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하드디스크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결정은 스마트폰에도 당연히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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