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한국을 찾은 미국의 대표적 진보파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는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 대해 “미국 안팎의 여러 판결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소수자 인권 보호’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동성애 자체가 불법이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각 주마다 이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여러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인들의 태도도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보수적 대법관도 찬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결정 당시 동성결혼을 인정한 몇개 주의 판결을 참고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캐나다 등의 판결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전날 김조광수·김승환씨 부부 등 한국 성소수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강연에서는 ‘바람직한 대법원의 역할’도 다뤄졌다. 미국 연방대법원을 ‘모델’로 여기는 한국 대법원이 긴즈버그 대법관을 통해 연방대법원의 장점을 들어보려는 취지였다. 사회자는 “대법원은 개별적 권리 구제보다 법령 해석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윌리엄 태프트(1857~1930) 전 연방대법원장의 말을 인용하며 바람직한 대법원의 역할이 뭔지를 물었다.
하지만 긴즈버그 대법관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연방대법원의 역할은 각 주 법원마다 다른 결론이 난 판결이나 법령의 해석을 통일하는 것”이라면서도 “헌법재판소가 따로 있는 한국은 미국과 시스템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엔 헌법재판소가 없어 헌재의 역할을 연방대법원이 총괄한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대법원 모델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각 사회의 상황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한 사회에 맞는 시스템이 다른 사회에 맞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다만 “사회의 의도를 법에 반영해야 이상적”이라고 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연방대법원이 존중받는 이유는 “사법 독립”에 있다고 했다. 그는 “특정 판결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기관이나 제도의 독립성도 유지돼야 한다. 무엇보다 법관의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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