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침묵·사법부 비평 외면 부끄러워”
10일 퇴임한 유지담(64·사시 5회) 대법관이 35년 동안 몸담아온 법원을 떠나면서 남긴 퇴임사가 법원 안팎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진정코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침묵했으면서, 정작 사법부에 대한 경청할 만한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 이를 외면한 채 ‘사법권 독립’이라든지 ‘재판의 권위’라는 등의 명분으로 사법부의 집단이익을 꾀하려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는 움직임에도 냉정한 판단을 유보한 채 그냥 동조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반성으로 대부분이 채워진 그의 퇴임사는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만을 강조했던 이전 대법관들의 퇴임사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그가 그 누구 못지않게 겸손하고 재판에 충실했던 대법관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그의 자기반성은 더 가슴에 와닿는다고 판사들은 말했다.
유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법관으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목표 설정도 없이 첫출발을 했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사 때마다 일희일비하고, 주변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때로는 소신도 감춰가며 요령껏 법관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분쟁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마땅히 했어야 할 봉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사법부 독립의 침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저 자신의 부족함에 있다”며 “당사자들의 입장을 깊이 헤아려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주며 신속하고 공정하게 결론을 내려주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덕목임에도, 당사자가 주장하는 말을 자세히 듣거나 써낸 글을 끝까지 읽는 것을 가지고도 마치 시혜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복을 입고 법대 위에 앉아서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권위는 그 법대 아래에 내려가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 당사자의 발을 씻겨주는 심정으로 그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법관의 권위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당연히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고 반성했다.
그는 “환송을 받기보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앞으로는 저와 같이 후회스런 말만을 남기면서 법원을 떠나는 법관이 한 분도 없기를 기원한다”며 퇴임사를 맺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자신을 돌아보는 순수한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며 “법원 바깥의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과거의 몇몇 퇴임사와 비교할 때 유 대법관의 퇴임사는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선배들이 ‘현직’에 있을 때도 이런 고민을 후배 법관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법원에 정착되었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덧붙였다. 김태규 고나무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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