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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권은희가 ‘모해 위증’?…검찰의 ‘무모한 유턴’!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08-28 17:13수정 2022-08-19 17:11

[더(The) 친절한 기자들]
김용판 무죄 판결 근거로 ‘제 얼굴에 침뱉기’식 기소
법원 판단은 “권은희 증언이 결정적 증거 못된다”는 것
검찰, 새로운 증거도 없이 2년 전 입장 뒤집어
채동욱 불명예 퇴진·윤석열 좌천의 강한 기시감
채동욱 전 검찰총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

“국정원이 정말 나쁜 짓을 한 거지. 그때 서울청에서 돌아간 일을 내가 대충 안다. 권은희는 훌륭한 사람이야.”

올해 초, 오랜만에 만난 경찰 간부가 불쑥 꺼냈던 이 말이 지난 19일 ‘땅~’ 머리를 때렸습니다. 이날은 검찰이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상관(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거짓 증언을 한 혐의(모해위증)로 재판에 넘긴 날입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권은희 의원은 어쩌다가 ‘거짓말쟁이’로까지 몰렸을까요? ‘권은희 의원을 믿는다’던 검찰은 왜 2년 만에 입장을 바꾼 걸까요?

■ 모해: 꾀를 내어 남을 해침

모해위증죄는 다른 사람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위증할 경우 적용되는 죄목입니다. 일반 위증죄보다 형량이 두 배 높습니다. 벌금형도 없습니다. 권 의원은 죄가 인정되면 무조건 의원직을 잃게 됩니다.

검찰은 “위증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면 모해위증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권 의원의 경우, 자신의 증언에 의해 김용판 전 청장이 불리해진다는 점을 명백히 알았기 때문에 위증이 인정되면 모해위증이 된다는 뜻입니다.

검찰은 권 의원의 네 가지 증언이 위증이라고 주장합니다.

1. 2012년 12월12일(국정원 직원의 댓글 공작 의혹이 제기된 건 11일 밤) 수서경찰서는 국정원 직원 컴퓨터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려다 말았는데, 이것이 김용판 전 청장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증언

2~3. 서울청이 임의로 국정원 직원 컴퓨터의 분석범위를 제한했다는 취지의 증언

(‘분석범위 제한이론’에 관해선 설명이 필요합니다. 당시 “혐의 없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경찰의 논리는 “국정원 직원이 컴퓨터를 임의제출하면서 ‘1, 2, 3에 관계된 것만 보라’고 했다. 따라서 1, 2, 3에 관계된 것의 존재유무만 살폈다. 없더라. 따라서 혐의 없다”로 요약됩니다. 당시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는 대선개입의 단서로 추정되는 4, 5, 6, 7, 8, 9 등이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분석범위가 1, 2, 3으로 제한돼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방어막을 쳤습니다. 즉, ‘임의제출자의 의사에 반해 수사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서울청이 자발적으로 분석범위를 제한했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참고로, 애당초 국정원 직원 컴퓨터를 임의제출이 아닌 압수수색 했다면 ‘분석범위 제한이론’은 설자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들’이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막은 이유입니다.)

4. 2012년 12월16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이 ‘후회한다’고 한 말을 다른 경찰에게서 들었다는 증언

■ 2년 만에 입장 바꾼 검찰

위증이란 고의로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주관적 거짓)을 하고, 이 진술이 실제 사실과도 달라야(객관적 거짓) 합니다. 예를 들어, ㄱ이 대문 앞에 서 있는 걸 봤다고 기억하고 있는데도 일부러 “ㄱ은 대문 앞에 없었다”고 기억에 반하는 증언(주관적 거짓)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실제로 ㄱ이 대문 앞에 없었다(객관적 진실)면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내부고발자들이 그렇듯, 권 의원 증언은 동료 경찰관들에 의해 모두 부정됩니다. 판사는 ‘권 의원 증언 내용은 이례적인 내용이라 소문이 날 법한데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권 의원 증언을 못 믿겠다’고 나옵니다. 증언을 한 경찰 중 상당수가 김용판 전 청장과 사실상 공범관계에 있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권은희 진술을 정리한 <경향신문> 기사)

그러나 아무런 설명 없이 180도 입장을 바꾼 검찰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법원이 ‘권 의원 진술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으니 검찰이 입장을 바꾸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검찰이 내세운 증인의 진술을 법원이 “믿지 못하겠다”며 무죄 선고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럴 때마다 검찰이 자신들의 증인을 위증 혐의로 수사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판사가 ‘증언을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은 ‘그 증언을 유죄의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위증을 했다’와는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위증이 되려면 ‘고의로’ (객관적·주관적) 거짓을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검찰은 증인이 위증을 했다는 결정적 물증(‘우리가 속았구나’라고 확신할 만한 무엇)이 드러날 때에만 수사에 나섭니다.

새롭게 발견된 권 의원의 위증 증거가 있을까요? 권 의원 모해위증 혐의에 관한 검찰 공소장은 법원 판결문과 대동소이합니다.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져야 할 텐데 말이죠. ‘다른 경찰관들과 권 의원 진술이 엇갈린다’는 게 검찰 공소장의 주요 근거입니다. 이건 새롭게 발견된 게 아닙니다.

달라진 건 검찰의 태도뿐입니다. 2013년에도 권 의원 진술과 다른 경찰관들 진술은 엇갈렸습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여러 검토 끝에 ‘권 의원 진술은 믿을 만하다’고 결론을 냈던 겁니다. 따라서 이를 뒤집으려면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뒤따라야 합니다.

검찰은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수사 및 재판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핵심 참고인들을 수사한 결과 당시 권 의원이 김용판 전 청장에게 불리하도록 허위 증언을 한 것이 확인됐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일개 경찰서 과장이었던 권 의원이 쳐다보기도 힘든 서울경찰청장의 불법행위를 폭로한 동기도 검찰은 설명하지 못합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불명예 퇴진,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의 한직 발령 등과 맥을 같이 하는 ‘찍어내기’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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