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했다 구속기소된 김기종(56·) 우리마당 대표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살인미수 등 대부분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검찰이 뒤늦게 추가 기소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김동아)는 11일 “김씨가 적어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음을 인식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리퍼트 대사를 처음 공격한 부위는 생명에 큰 위험을 줄 수 있는 얼굴과 목 부분이다. 리퍼트 대사가 입은 상처 1~2㎝ 아래로 경동맥이 지나고 있었으므로 이 부위를 칼에 찔렸으면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공격 부위, 반복성, 상해 정도 등을 볼 때 적어도 미필적 고의로나마 살인의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중형 선고 이유로 “대한민국에 파견된 외국 사절을 심각하게 공격한 최초의 사건으로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며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개인이든 집단이든 부당한 폭력이 어떠한 목적의 수단이 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고하게 정립돼 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조심스럽게 만들어온 소중한 질서와 문화에 심각한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혐의(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에 대해서는 “북한의 대외적인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를 국가의 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주체사상, 핵실험에 대한 옹호 등과 같게 볼 수는 없다. 이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 내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학계나 시민단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김씨의 행동이 한-미 외교관계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국가 존립에 실질적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선고 직후 “보안법 위반 혐의 무죄 판단에 대해 법원과 견해를 달리한다. 무죄 부분과 양형 모두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씨의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도 “양형 부분과 살인의 의도 등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다”며 “항소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지난 3월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리퍼트 대사를 덮쳐 얼굴과 왼쪽 손목 등을 3차례 이상 과도로 찔렀다. 검찰은 현장에서 체포된 김씨를 살인미수와 외국 사절 폭행,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한 뒤 7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북침 전쟁연습이므로 중단돼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추가한 바 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