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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일동포들, 정체성 지키려 관혼상제 성대히 치러

등록 2015-09-14 20:16수정 2015-09-15 17:15

9월12일 중국 연길시 연변대학교에서 열린 ‘2015 통일인문학 세계포럼’ 참석자들이 한(조선)민족의 전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러나 여전히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토론하고 있다. 인간통합을 위한 통일인문학 개념에 기초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남한의 건국대를 비롯해, 중국 연변대, 재일 조선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총 12명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9월12일 중국 연길시 연변대학교에서 열린 ‘2015 통일인문학 세계포럼’ 참석자들이 한(조선)민족의 전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러나 여전히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토론하고 있다. 인간통합을 위한 통일인문학 개념에 기초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남한의 건국대를 비롯해, 중국 연변대, 재일 조선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총 12명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싱크탱크 광장] 제2회 통일인문학 세계포럼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관혼상제는 남북한이나 재중동포와 비교할 때 성대하다. 결혼식을 예로 들면, 생활형편이 아주 여유롭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신랑 쪽과 신부 쪽을 합쳐 400~500명은 초청한다. 결혼식 진행도 시종 유쾌한 잔치 분위기를 유지한다.

남북한과 재중·재일동포들
전통 보존·발전 방법 살펴봐

재일 조선대 김정호 교수 등 발제
다양한 ‘민족성 지키기’ 방식 소개

아이들에 동화와 동시 읽히려
문인 아닌 교사들이 아동문학 시작

아랑삶세 극단 활동도 마찬가지
“분단 극복과 통일 의지 담은 것”

대표적인 것이 결혼식 끝부분에 진행되는 신랑과 장인의 기마전이다. 물론 진짜 싸우는 것은 아니다. 기마전은 결혼식 분위기를 돋운 뒤 신랑 쪽 말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신랑은 장인에게 다가가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건넨다고 한다. 결혼식의 대미는 ‘통일열차’다. 신랑신부와 그 가족, 그리고 결혼식 하객들이 한 줄로 통일열차를 만들어 행사장을 도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무리한다.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결혼식 등은 어떤 연유로 이런 모습을 띠게 된 것일까? 지난 12일 중국 연길시 연변대학에서 열린 ‘2015년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은 이에 대해 해답을 찾는 자리였다. ‘전통문화에 대한 현대적 조명과 민족의 화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계포럼에서는 남북한과 재중·재일동포들이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거나 변화·발전시켜왔는지 살펴봤다.

조선대 졸업생이 중심이 된 극단 아랑삶세에서는 남북분단과 통일, 재일동포들의 삶 문제를 주로 표현해왔다. 특히 1994년 이후에는 재일동포들의 삶과, 동포사회와 일본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왔다. 사진은 아랑삶세가 재일동포들의 삶을 주제로 무대에 올린 연극 <하늘위의 꿈나라>와 아랑삶세 로고.
조선대 졸업생이 중심이 된 극단 아랑삶세에서는 남북분단과 통일, 재일동포들의 삶 문제를 주로 표현해왔다. 특히 1994년 이후에는 재일동포들의 삶과, 동포사회와 일본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왔다. 사진은 아랑삶세가 재일동포들의 삶을 주제로 무대에 올린 연극 <하늘위의 꿈나라>와 아랑삶세 로고.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은 남한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과 재일 조선대의 조선문제연구센터, 중국 연변대의 조선반도연구원, 일본 리쓰메이칸대의 코리아연구센터 등 4개 대학 연구소가 ‘통일인문학’ 개념에 기초해 지난해부터 열고 있는 국제대회다. ‘통일인문학’은 2008년 김성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장이 중심이 돼 제기된 개념이다. 김 단장은 이를 “정치·경제적인 체제통합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적 통일담론을 넘어서 가치·정서·생활상의 공통성을 창출하는, 통일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을 꾀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2회째를 맞는 올해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에서는 4개국 대학 연구소에서 총 12명이 발제자로 나섰다. 발제자들은 남북한과 해외동포들 사이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이며, 여전히 남아 있는 공통점은 또 무엇인지 살펴봤다. 이 중 김정호 재일 조선대 교수 등 3명이 재일동포 문제를 다뤘다.

김 교수 등은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관혼상제가 성대하게 변화된 이유를 ‘관혼상제를 통한 민족 아이덴티티 지키기’로 설명했다. 총련계 재일동포들로서는 적대적인 환경인 일본 사회 속에서 관혼상제를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자리로 인식했고, 이에 따라 행사 내용과 규모도 성대하게 바뀌어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우자 리쓰메이칸대 언어교육센터 연구원은 김희로 사건을 사례로 삼아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진행돼왔는지를 살폈다. 김희로 사건은 1968년 재일동포인 김씨가 일본 시즈오카현의 한 클럽에서 자신에게 ‘조센진,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모욕한 일본 야쿠자 두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김 연구원은 조센진이란 단어가 조선인을 일본어로 부른 것이지만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에게 행해지는 차별을 고려할 때, 발언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미세한 공격’이나 ‘숨겨진 인종차별’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차별적 환경 속에서 총련계를 포함한 재일동포들이 민족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정인 조선대 문학역사학부 교수는 ‘재일 조선 아동문학’을 통해 이런 노력을 설명했다. 서 교수는 재일동포 어린이들이 주 독자인 ‘재일 조선 아동문학’은 사실 “문학에 뜻을 둔 문인들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아이들을 위한 민족교육용 국어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동문학이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해방 뒤 재일동포들은 남북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됐고, 이에 따라 아이들에게도 이런 재일동포들의 환경에 바탕을 둔 동화와 동시 등을 읽힐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서 교수는 따라서 재일 조선 아동문학은 국어 교과서를 만드는 교사 등이 동시 등을 쓰기 시작하면서 태동했다고 설명했다. 남한의 가수 이지상씨가 곡을 붙여 잘 알려진 동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를 쓴 사람도 1948년 당시 민족학교 교원이던 허남기 선생이었다. 자신도 3권의 동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서 교수는 이에 따라 재일 아동문학의 경우 “우리말로 문학 작품을 쓰는 전업작가는 하나도 없고 모두 교원, 기자 등이 작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일동포 3세나 4세로 내려가면서 겸업 상태에서라도 아동문학 작품을 쓴다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정호 조선대 문학역사학부 교수는 재일동포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활동으로 연극을 꼽았다. 그는 특히 조선대 출신이 중심이 돼 1988년 창단한 극단 ‘아랑삶세’의 활동을 중심으로 재일동포 연극인들의 노력과 변화 등을 설명했다. ‘아랑삶세’에서 아랑은 아리랑전설 속 아랑전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김 교수는 “아랑전설의 내용은 분리된 넋과 몸을 찾다가 기어이 하나가 된다는 내용”이라며 “극단 이름에 분단 극복과 통일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특히 ‘삶세’는 재일동포 3세의 삶을 다룬다는 지향과, 재일동포 3세에서 기어코 통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아랑삶세가 초기부터 분단 문제나 통일 문제 등을 주로 다루어왔지만, 시기에 따라 주제 등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가령 김 교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남한의 노래, 사물놀이, 드라마 등이 대거 일본에 들어오면서 재일동포들의 조국관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재일동포들이 “생활감각적으로는 이남이 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정치이념과 생활감각의 분리가 현재화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시기적으로도 초기에는 연극의 주제가 분단과 통일 문제에 집중돼 있다가 1994년 이후에는 재일동포의 생활에 바탕을 둔 민족성 문제를 다양한 시점에서 제기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은 이와 함께 재중동포들의 관혼상제의 변화 등 우리 민족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변화와 차이점을 살펴봤다. 김성민 단장은 이런 차이를 드러내 살펴보는 것이 “가치·정서·생활상의 공통성 창출을 통해 진정한 인간통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남북과 동포들이 새로운 공통성 찾는 인문학적 소통의 장”

포럼 주춧돌 역할 김성민 교수

김성민 교수.
김성민 교수.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이 진행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김성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장은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은 남과 북 그리고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새로운 공통성을 찾아내기 위한 소통의 장”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소통은 분단으로 인해 모두가 소외돼 있는 현 상태에서 우리 민족을 ‘치유’하는 인문학적 치유책을 찾아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특히 “올해 북한 학자들의 참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마지막에 불참 쪽으로 결정돼 아쉬웠다”면서도 “내년 제3차 통일인문학 세계포럼 때는 북쪽에서 꼭 참석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2008년 통일인문학 개념을 발의한 이후, 2009년부터 인문한국(HK)지원사업으로 통일인문학연구단을 꾸려 학문의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 2014년 9월부터는 국내 최초로 건국대학교 대학원 내에 협동과정 통일인문학 석·박사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2번째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을 개최하게 됐다.

“질적으로 발전한 느낌이다. 2회째로 접어들면서 통일인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북한과 중국·일본·러시아·미국까지 포함한 6개국 포럼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이번 대회 때 언급된 관혼상제 얘기처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인간적 차원에서 느낄 수 있는 분야들을 더욱 확대해 다룰 계획이다.”

-이번 대회 때도 북한 참여를 위해 많이 노력하신 것으로 안다.

“그렇다. 이번에도 많은 준비를 했는데, 막판에 못 나와서 아쉽다. 그러나 2008년 두만강포럼 때부터 만나 교류를 하자는 의견을 나눴고, 실제로 2012년 10월에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과 북쪽 사회과학원이 직접 만나 포럼을 연 적도 있다. 통일인문학 세계포럼이 햇수를 거듭해나가면 북도 그 진정성에 대해 이해하고 꼭 참여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통일인문학연구단은 현재 인문한국지원사업 중 가장 큰 10개년 프로젝트로 선정돼 현재 2단계까지 마무리된 상태다. 10월6일부터 시작되는 3단계 통일인문학 연구의 방향은?

“3단계 목표는 통일인문학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포스트 통일이라는 가정 하에 이를 지금부터 실현해가는 방안을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가령 체제가 통일된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통일’을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려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단계까지 구축된 통일의 인문적 비전을 바탕으로 민족적 연대, 민주주의와 인권, 생태평화 등을 구체화해가려는 것이다.”

연길/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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