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은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유책주의’ 유지 논리와 배경
전원합의체, 7-6으로 판례 재확인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나고
상대 배우자 보호장치도 아직 없어”
예외적 허용 기준은 소폭 넓혀
전원합의체, 7-6으로 판례 재확인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나고
상대 배우자 보호장치도 아직 없어”
예외적 허용 기준은 소폭 넓혀
대법원이 ‘외도한 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받아줘야 하는지’를 두고 처음으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했으나 결혼생활 파탄 책임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판례(‘유책주의’)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냈다. 하지만 대법관 13명 가운데 6명은 결혼생활이 이미 파탄 났다면 실체 없는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게 맞다는 반대의견을 내어, 앞으로도 사회적 논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혼외 딸을 두고 15년여간 별거생활을 한 ㄱ(68)씨가 아내 ㄴ(66)씨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혼인 파탄을 일으킨 배우자가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의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법원칙)에 반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널리 허가할 경우, 책임 없는 배우자가 생계나 자녀 부양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일방적 불이익이 크므로 현 단계에서는 이런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다수 서구 국가들은 혼인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 상태라면 책임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인정하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우리 사회·경제적 여건상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미국·독일 등은 배우자나 자녀가 궁핍한 처지에 놓일 우려가 있으면 이혼을 불허하거나, 이혼 뒤 유책배우자에게 부양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법적 장치가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그런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또 파탄주의 도입국은 재판을 통한 이혼만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협의이혼도 할 수 있어 유책배우자도 상대를 설득해 이혼할 길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여성 지위 향상과 재산분할 제도 보완으로 파탄주의를 도입해도 여성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회·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됐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반박했다. 이인복·이상훈·박보영·조희대·권순일·박상옥 대법관이 이런 다수의견을 형성한 상황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같은 의견을 내며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를 다소 확장시켰다. 기존 판례도 “상대 배우자도 혼인 계속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이혼을 인정해왔다. 이번에는 여기에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지거나 △세월이 지나 유책성과 상대 배우자의 정신적 고통이 약화되는 등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판으로 이혼할 수 있다는 점을 추가했다.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책임 정도, 상대 배우자의 의사와 감정, 별거 기간,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생활 보장 정도 등을 두루 따져 이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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