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혼 처벌할 길 없어져
파탄주의로 가면 중혼 허용 모양새”
파탄주의로 가면 중혼 허용 모양새”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권 문제에 대해 6월에 전문가들을 불러 공개변론도 열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누구 책임이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혼인생활이 파탄 났다면 이혼 청구를 받아주는 ‘파탄주의’가 제한적이나마 인정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폐지한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었다. 간통죄 폐지에 이어 이혼에서 파탄주의가 채택되면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개인의 행복 추구권 신장에 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결국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다수파 대법관들은 되레 “간통죄 폐지 이후 중혼을 처벌할 방법이 없어진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주의로 간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간통죄 폐지가 오히려 기존 판례 유지의 근거로 쓰인 것이다. 대법원은 또 판결 의미에 대해 “개인의 행복 추구권보다 가족·혼인제도의 가치를 중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사 전문 변호사 등은 이런 결과를 파탄주의 도입 논의가 간통죄만큼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간통죄는 헌재에서 네번의 합헌 결정 끝에 위헌 결정이 나왔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회적 논의를 거쳤다는 뜻이다. 반면 이혼에서의 파탄주의 도입 여부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처음으로 다뤄졌다. 이현곤 변호사(법무법인 지우)는 “대법원이 그동안 이 문제를 적극 다루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반대의견이 6명 나온 것은 의미 있다. 앞으로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런 과정을 거쳐 파탄주의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변호사는 “사회의 전반적 흐름은 파탄주의로 가고 있지만 50대 이상 주류 남성이 대다수인 대법원이 파탄주의의 부작용을 우려해 멈칫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태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간통죄가 폐지됐어도 여전히 민법상 부부는 정조 의무와 협력 의무가 있다. 이를 위반한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줄 것인지는 형사처벌인 간통죄와 별개 문제다. 간통죄 폐지와 유책주의 유지가 모순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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