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미국의 언론매체 <시엔엔>은 김련희씨 가족을 평양에서 만나 인터뷰한 뒤 김련희씨의 현재 모습과 함께 이 사건을 보도했다. 왼쪽은 김씨의 딸 이연금씨, 오른쪽은 딸의 얼굴을 4년 만에 처음 본 뒤 눈물짓는 김련희씨. 시엔엔은 보도 말미에 “(평양의) 김씨 가족들은 김씨의 촬영 영상을 본 뒤 말없이 가슴의 눈물만 흘렸다”고 전했다.
시엔엔 보도 화면 갈무리
[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련희와 탈북 브로커
김련희와 탈북 브로커
▶ <한겨레> 토요판이 지난 7월4일치 커버스토리 사연으로 전해드린 김련희씨 이야기의 후속 기사입니다. 북한이 22일 김씨의 북송을 남쪽 정부에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통일부는 즉각 불가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김씨처럼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남한으로 들어와 후회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사연을 <한겨레>가 추가로 취재했습니다. 인신매매 사업과 유사하게 전락한 탈북 브로커 시장에 대해 우리 정부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북한 당국이 남쪽에 북한이탈주민 김련희씨의 북한 송환을 촉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김련희(46)씨는 <한겨레>가 지난 7월 보도한(7월4일치 1·3·4면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이탈주민이다. 김씨는 여행 목적으로 중국에 체류하던 중 탈북 브로커에게 설득당해 2011년 9월 남한에 입국했으나 자신은 실수로 입국했다며 국가정보원에 북한 송환을 요구했던 여성이다.
탈북 브로커가 ‘남한에 들어가서 얼마간 돈을 벌다가 중국으로 나오면 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 탈북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남한에 도착한 뒤 머물게 되는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줄곧 북송을 요구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국가정보원과 통일부는 김씨의 북송 요청을 거절해왔다.
<한겨레> 보도 이후 <뉴욕 타임스>, <시엔엔>(CNN) 등의 해외 매체들도 김씨의 사연을 조명한 가운데 북한 당국이 김씨의 송환을 주장해 ‘김련희 사건’은 국제적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북한의 대외용 누리집 ‘조선의 오늘’은 23일 “김련희는 4년 전 괴뢰정보원의 마수에 걸려 남조선에 끌려갔다. 남조선 괴뢰들은 김련희의 호소와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그의 공화국에로의 송환을 가로막고 있다”며 “비인간적이며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누리집 ‘우리민족끼리’도 21일 “남조선 당국은 김련희의 화목한 가정을 인위적으로 갈라놓고 단란하고 행복한 생활을 파괴한 저들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그 주범들을 법정에 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민족끼리’는 24일 한 차례 더 김씨의 송환을 촉구했다.
‘김련희 북송’ 주장하고 나선 북한
시엔엔 등 해외매체도 앞다퉈 조명
“정착금 1억원 준다”는 말에 속아
돌아갈 생각으로 입국한 ㄱ씨 등
김씨 주장 뒷받침 사례 나와 한 탈북 브로커는 탈북 과정이
인신매매 과정과 닮았다고 증언
“브로커들은 돈 벌 목적 위해
과장된 설명으로 탈북자 꾀기에
국정원이 이를 구분해 내어야” 제2의 김련희, 고경희 사건 김련희씨는 지난 7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중국에 체류하던 중 남한으로 가면 돈을 벌어 돌아올 수 있다는 브로커의 설득으로 남한행을 한때 선택한 것은 맞지만 (제3국으로 가는) 중국 국경을 넘기 전 브로커에게 남쪽행을 취소하겠다고 말한 뒤에도 브로커가 여권을 돌려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남한에 오게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의 이러한 주장은 그와 함께 남한에 들어온 동료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으로도 확인됐다. 김씨의 사례는 북한이탈주민이 정치적 망명 목적뿐 아니라 경제적 목적을 위해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남으로 오는 경우가 일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브로커들은 북한이탈주민에게 남쪽에서의 삶에 대해 과장된 설명을 해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련희씨는 브로커로부터 남한에 여섯 달만 머물면 여권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김씨는 북송을 주장하다 여권을 받지 못했다. 또한 중국으로 건너가려고 밀항을 시도하거나 북한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2015년 4월 대구고등법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받기도 했다. 김련희씨 보도 이후 김씨처럼 브로커로부터 과장된 설명을 듣고 남쪽으로 왔다가 후회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사연을 더 접할 수 있었다. ㄱ(50)씨는 김씨 관련 보도를 본 직후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연락을 해왔다. ㄱ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ㄱ씨는 2007년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 머물고 있었다. 돈을 벌 목적이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돈벌이를 위해 불법으로 중국 국경을 넘나들며 무역사업 등을 한다는 게 북한이탈주민들의 설명이다. ㄱ씨는 연길에 체류할 때 한국에서 온 목사가 운영하는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그 목사가 한 탈북 브로커를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ㄱ씨에게 그 브로커는 ‘한국으로 가면 정착지원금 1억원이 나오고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도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남한 국적을 받으면 여권을 받아 언제든 다시 중국으로 나올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ㄱ씨는 비록 불법으로 중국에 체류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남한 국민이 될 마음은 없었다. 북에는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돈만 벌어 돌아가면 북한도 그렇게 사람이 못 살 곳은 아니라는 게 ㄱ씨의 생각이었다. ㄱ씨는 위장 탈북자가 되기로 하고 중국 국경을 넘었고 베트남을 거쳐 2008년 남한으로 왔다. ㄱ씨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온 뒤에야 현실을 깨달았다. 정착지원금은 2000만원 정도에 불과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집도 매매할 수 없는 임대아파트였다. ㄱ씨는 브로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브로커는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집을 찾아와 남한 입국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ㄱ씨는 애초 브로커에게 들었던 1억원을 모으려고 여전히 남한에 머물며 돈을 벌고 있다. ㄱ씨는 북에 있는 가족과 고향이 그립다. 2013년 1월2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고경희씨 사건’도 브로커에게 속은 사례라고 일부 북한이탈주민은 주장한다. 고경희씨의 오빠인 고경호(46)씨는 24일 <한겨레>에 고경희씨가 겪은 일을 설명했다. 고경호씨는 2013년 12월 탈북해 현재 남한에 머물고 있다. 고경호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고경희씨는 2011년 압록강변 국경 도시인 혜산시에서 살다 중국으로 돈을 벌러 나온 북한 주민이었다. 고경희씨를 중국으로 오게 한 브로커는 고씨를 다시 한번 꾀어내 돈을 받고 캐나다로 보내려 했다고 한다. 캐나다 국적을 받으면 다시 자유롭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브로커의 말에 고씨는 중국 국경을 넘었고 제3국을 거쳐 타이로 갔다. 난민수용소에서 머물던 고씨는 결국 남한으로 보내졌다. 실망한 고씨는 남한 체류 6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경유해 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고씨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신매매 되듯 남쪽으로 보내졌다고 느꼈고 결국 북한의 텔레비전에 출연해 자신이 남쪽으로 납치됐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경희씨는 북으로 돌아가서도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고경호씨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여동생이 안정적으로 북한에 정착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동생은 내가 탈북한 뒤 지난해 12월 보위부에 체포됐고 지금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한 사람 팔면’ 1500만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수년간 탈북 브로커 일을 해온 ㄴ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탈북 브로커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국가정보원의 지나친 ‘탈북성과주의’를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꾀어내고 국경을 건너게 하는 일은 대체로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나 한족이 맡는다. 이들은 남북 분단의 비극이나 인도주의 등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북한이탈주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러한 브로커들의 특징을 알면서도 활용하고 스스로 ‘브로커의 돈줄’이 되었다는 것이 ㄴ씨의 설명이다. 북한 주민이 북한에서 출발해 북-중 접경지역 도강을 비롯해 제3국까지 안내받고 브로커에게 지출하는 비용은 1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중국 내에 머물던 북한 주민이 한국까지 오는 비용은 성인은 250만~400만원, 미성년은 200만원 안팎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국경 감시가 철저해지면서 브로커 비용이 더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브로커에게는 북한 주민 머릿수 하나마다 많게는 1500만원짜리 현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남한에 도착한 북한이탈주민은 대개 하나원(남한 정착교육기관)을 나와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한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은 국내 브로커 조직과 연계됐기 때문에 돈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국내 브로커 조직은 국정원 직원이나 국정원 파견 경찰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자신이 입국을 도운 북한이탈주민의 신원 정보를 파악해 그들을 찾아간다는 것이 ㄴ씨의 설명이다. ㄴ씨는 국정원이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브로커 조직의 활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ㄴ씨는 “국정원은 브로커들이 인신매매 조직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을 계속 활용하고 있다. 이런 브로커들은 돈이 안 될 것 같은 북한이탈주민은 중간에 버리거나 중국 공안에 넘겨버리기도 한다. 국정원이 질 낮은 브로커들을 계속 활용하면 애초 탈북 의사가 없던 사람들도 남쪽에 오게 되는 등 피해자가 계속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남쪽이 북한이탈주민을 유인 납치해 강제로 남한 국민으로 만드는 인권유린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관계와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국정원이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북한이탈주민을 꾀어내는 브로커들을 계속 활용한다면 북쪽에서 이렇게 비난하는 논리를 반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 유엔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의 부속 의정서인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무력행사, 강박, 납치,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신매매를 누군가의 신체를 납치해 팔아넘기는 경우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적 기준은 인신매매의 다양한 유형과 그 과정을 전반적으로 함께 살피며 정의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신매매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서 브로커에게 기망을 당했는지를 핵심적으로 본다. 북한이탈주민 일부가 남으로 오게 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신매매와 유사한 일이 개입되는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하지만 국정원이 브로커 일당에게 기망당한 북한이탈주민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남쪽 국민으로 만들어버리면 자칫 우리 정부가 인신매매 조직을 활용해 북한 주민을 탈출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김련희씨의 경우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브로커 조직에 속아서 잘못 오게 됐다며 북송을 요청했다. 만약 국정원이 당시 김씨의 주장에 귀 기울여 순수 탈북자인지 사고로 입국하게 된 경우인지를 구분해 조처했다면 현재 김씨가 겪고 있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경호씨는 “김련희씨의 경우 국정원이 자세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북송시켰어야 한다. 정치적 망명 목적으로 건너온 탈북자인지 어쩌다 사고로 입국하게 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강제로 남쪽 국민으로 만들어버렸는지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쪽이 계속 김련희씨 의사를 무시하고 억류한다면 인권국가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NN에 나온 김련희 딸의 호소 통일부는 여전히 김련희씨의 북송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24일 “우리 법체계상으로는 김련희씨를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련희씨는 탈북 과정에서 수차례 남쪽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국정원의 조사 과정을 뒤엎을 만한 근거가 없다.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김련희씨는 탈북 기간이 상당하고 남한으로의 귀화 의사를 충분히 확인했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추가 논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김련희씨가 “국정원이 보호동의서(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부여받고 탈북자 정착 지원을 받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지 않으면 하나원(남한 정착 교육시설)에 갈 수 없고 북송도 안 되고 합동신문센터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고 설명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통일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정원으로부터 그러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우리가 국정원에 그 경위를 물어본다 해도 국정원이 알려줄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김련희씨는 현재 대구의 조그만 공장에서 일하며 북한으로 돌아갈 날만 꿈꾸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받는다고 하여 이달 초 신청해보았으나 별다른 연락은 받지 못했다. 대신 <시엔엔> 기자가 김씨 가족의 영상을 평양에서 촬영해 김씨에게 보여주어 그는 영상으로나마 가족 상봉을 대신 했다. 보도에 나온 김씨의 딸 이연금(21)씨는 “우리 엄마가 왜 돌아오지 못하느냐.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했다. 김씨도 딸의 얼굴을 4년 만에 영상으로나마 지켜보는 내내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24일 “나는 단 한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국민의 개념)임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남쪽에서 수억원을 준다 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면서 남한에 억류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은 왜 외면하느냐”고 호소했다. 통일운동가인 이적 목사(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운영위원)는 “남과 북 모두 유엔에 가입한 나라다. 상호간 이적단체로 보기보다 피를 나눈 동포의 나라로 봐야 한다. 남북은 김련희씨 사건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순수한 동포애·민족애를 기반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김련희씨의 소신대로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을 남쪽이 보장해준다면 남과 북 사이 새로운 신뢰 관계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김련희씨의 사연을 다룬 지난 7월4일치 <한겨레> 토요판 1면.
시엔엔 등 해외매체도 앞다퉈 조명
“정착금 1억원 준다”는 말에 속아
돌아갈 생각으로 입국한 ㄱ씨 등
김씨 주장 뒷받침 사례 나와 한 탈북 브로커는 탈북 과정이
인신매매 과정과 닮았다고 증언
“브로커들은 돈 벌 목적 위해
과장된 설명으로 탈북자 꾀기에
국정원이 이를 구분해 내어야” 제2의 김련희, 고경희 사건 김련희씨는 지난 7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중국에 체류하던 중 남한으로 가면 돈을 벌어 돌아올 수 있다는 브로커의 설득으로 남한행을 한때 선택한 것은 맞지만 (제3국으로 가는) 중국 국경을 넘기 전 브로커에게 남쪽행을 취소하겠다고 말한 뒤에도 브로커가 여권을 돌려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남한에 오게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의 이러한 주장은 그와 함께 남한에 들어온 동료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으로도 확인됐다. 김씨의 사례는 북한이탈주민이 정치적 망명 목적뿐 아니라 경제적 목적을 위해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남으로 오는 경우가 일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브로커들은 북한이탈주민에게 남쪽에서의 삶에 대해 과장된 설명을 해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련희씨는 브로커로부터 남한에 여섯 달만 머물면 여권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김씨는 북송을 주장하다 여권을 받지 못했다. 또한 중국으로 건너가려고 밀항을 시도하거나 북한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2015년 4월 대구고등법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받기도 했다. 김련희씨 보도 이후 김씨처럼 브로커로부터 과장된 설명을 듣고 남쪽으로 왔다가 후회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사연을 더 접할 수 있었다. ㄱ(50)씨는 김씨 관련 보도를 본 직후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연락을 해왔다. ㄱ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ㄱ씨는 2007년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 머물고 있었다. 돈을 벌 목적이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돈벌이를 위해 불법으로 중국 국경을 넘나들며 무역사업 등을 한다는 게 북한이탈주민들의 설명이다. ㄱ씨는 연길에 체류할 때 한국에서 온 목사가 운영하는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그 목사가 한 탈북 브로커를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ㄱ씨에게 그 브로커는 ‘한국으로 가면 정착지원금 1억원이 나오고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도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남한 국적을 받으면 여권을 받아 언제든 다시 중국으로 나올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ㄱ씨는 비록 불법으로 중국에 체류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남한 국민이 될 마음은 없었다. 북에는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돈만 벌어 돌아가면 북한도 그렇게 사람이 못 살 곳은 아니라는 게 ㄱ씨의 생각이었다. ㄱ씨는 위장 탈북자가 되기로 하고 중국 국경을 넘었고 베트남을 거쳐 2008년 남한으로 왔다. ㄱ씨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온 뒤에야 현실을 깨달았다. 정착지원금은 2000만원 정도에 불과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집도 매매할 수 없는 임대아파트였다. ㄱ씨는 브로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브로커는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집을 찾아와 남한 입국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ㄱ씨는 애초 브로커에게 들었던 1억원을 모으려고 여전히 남한에 머물며 돈을 벌고 있다. ㄱ씨는 북에 있는 가족과 고향이 그립다. 2013년 1월2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고경희씨 사건’도 브로커에게 속은 사례라고 일부 북한이탈주민은 주장한다. 고경희씨의 오빠인 고경호(46)씨는 24일 <한겨레>에 고경희씨가 겪은 일을 설명했다. 고경호씨는 2013년 12월 탈북해 현재 남한에 머물고 있다. 고경호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고경희씨는 2011년 압록강변 국경 도시인 혜산시에서 살다 중국으로 돈을 벌러 나온 북한 주민이었다. 고경희씨를 중국으로 오게 한 브로커는 고씨를 다시 한번 꾀어내 돈을 받고 캐나다로 보내려 했다고 한다. 캐나다 국적을 받으면 다시 자유롭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브로커의 말에 고씨는 중국 국경을 넘었고 제3국을 거쳐 타이로 갔다. 난민수용소에서 머물던 고씨는 결국 남한으로 보내졌다. 실망한 고씨는 남한 체류 6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경유해 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고씨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신매매 되듯 남쪽으로 보내졌다고 느꼈고 결국 북한의 텔레비전에 출연해 자신이 남쪽으로 납치됐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경희씨는 북으로 돌아가서도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고경호씨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여동생이 안정적으로 북한에 정착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동생은 내가 탈북한 뒤 지난해 12월 보위부에 체포됐고 지금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한 사람 팔면’ 1500만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수년간 탈북 브로커 일을 해온 ㄴ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탈북 브로커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국가정보원의 지나친 ‘탈북성과주의’를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꾀어내고 국경을 건너게 하는 일은 대체로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나 한족이 맡는다. 이들은 남북 분단의 비극이나 인도주의 등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북한이탈주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러한 브로커들의 특징을 알면서도 활용하고 스스로 ‘브로커의 돈줄’이 되었다는 것이 ㄴ씨의 설명이다. 북한 주민이 북한에서 출발해 북-중 접경지역 도강을 비롯해 제3국까지 안내받고 브로커에게 지출하는 비용은 1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중국 내에 머물던 북한 주민이 한국까지 오는 비용은 성인은 250만~400만원, 미성년은 200만원 안팎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국경 감시가 철저해지면서 브로커 비용이 더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브로커에게는 북한 주민 머릿수 하나마다 많게는 1500만원짜리 현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남한에 도착한 북한이탈주민은 대개 하나원(남한 정착교육기관)을 나와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한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은 국내 브로커 조직과 연계됐기 때문에 돈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국내 브로커 조직은 국정원 직원이나 국정원 파견 경찰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자신이 입국을 도운 북한이탈주민의 신원 정보를 파악해 그들을 찾아간다는 것이 ㄴ씨의 설명이다. ㄴ씨는 국정원이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브로커 조직의 활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ㄴ씨는 “국정원은 브로커들이 인신매매 조직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을 계속 활용하고 있다. 이런 브로커들은 돈이 안 될 것 같은 북한이탈주민은 중간에 버리거나 중국 공안에 넘겨버리기도 한다. 국정원이 질 낮은 브로커들을 계속 활용하면 애초 탈북 의사가 없던 사람들도 남쪽에 오게 되는 등 피해자가 계속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남쪽이 북한이탈주민을 유인 납치해 강제로 남한 국민으로 만드는 인권유린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관계와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국정원이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북한이탈주민을 꾀어내는 브로커들을 계속 활용한다면 북쪽에서 이렇게 비난하는 논리를 반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 유엔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의 부속 의정서인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무력행사, 강박, 납치,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신매매를 누군가의 신체를 납치해 팔아넘기는 경우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적 기준은 인신매매의 다양한 유형과 그 과정을 전반적으로 함께 살피며 정의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신매매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서 브로커에게 기망을 당했는지를 핵심적으로 본다. 북한이탈주민 일부가 남으로 오게 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신매매와 유사한 일이 개입되는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하지만 국정원이 브로커 일당에게 기망당한 북한이탈주민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남쪽 국민으로 만들어버리면 자칫 우리 정부가 인신매매 조직을 활용해 북한 주민을 탈출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김련희씨의 경우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브로커 조직에 속아서 잘못 오게 됐다며 북송을 요청했다. 만약 국정원이 당시 김씨의 주장에 귀 기울여 순수 탈북자인지 사고로 입국하게 된 경우인지를 구분해 조처했다면 현재 김씨가 겪고 있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경호씨는 “김련희씨의 경우 국정원이 자세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북송시켰어야 한다. 정치적 망명 목적으로 건너온 탈북자인지 어쩌다 사고로 입국하게 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강제로 남쪽 국민으로 만들어버렸는지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쪽이 계속 김련희씨 의사를 무시하고 억류한다면 인권국가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NN에 나온 김련희 딸의 호소 통일부는 여전히 김련희씨의 북송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24일 “우리 법체계상으로는 김련희씨를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련희씨는 탈북 과정에서 수차례 남쪽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국정원의 조사 과정을 뒤엎을 만한 근거가 없다.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김련희씨는 탈북 기간이 상당하고 남한으로의 귀화 의사를 충분히 확인했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추가 논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김련희씨가 “국정원이 보호동의서(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부여받고 탈북자 정착 지원을 받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지 않으면 하나원(남한 정착 교육시설)에 갈 수 없고 북송도 안 되고 합동신문센터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고 설명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통일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정원으로부터 그러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우리가 국정원에 그 경위를 물어본다 해도 국정원이 알려줄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김련희씨는 현재 대구의 조그만 공장에서 일하며 북한으로 돌아갈 날만 꿈꾸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받는다고 하여 이달 초 신청해보았으나 별다른 연락은 받지 못했다. 대신 <시엔엔> 기자가 김씨 가족의 영상을 평양에서 촬영해 김씨에게 보여주어 그는 영상으로나마 가족 상봉을 대신 했다. 보도에 나온 김씨의 딸 이연금(21)씨는 “우리 엄마가 왜 돌아오지 못하느냐.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했다. 김씨도 딸의 얼굴을 4년 만에 영상으로나마 지켜보는 내내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24일 “나는 단 한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국민의 개념)임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남쪽에서 수억원을 준다 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면서 남한에 억류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은 왜 외면하느냐”고 호소했다. 통일운동가인 이적 목사(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운영위원)는 “남과 북 모두 유엔에 가입한 나라다. 상호간 이적단체로 보기보다 피를 나눈 동포의 나라로 봐야 한다. 남북은 김련희씨 사건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순수한 동포애·민족애를 기반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김련희씨의 소신대로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을 남쪽이 보장해준다면 남과 북 사이 새로운 신뢰 관계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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