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직원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범법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고용관계를 중단할 만한 구체적 사정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해고한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직원을 해고한 대기업 ㅎ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직원 윤아무개씨의 해고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윤씨는 2013년 13살 여자아이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돼 이듬해 유죄를 확정받았다. 회사 징계위원회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무렵 윤씨가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켰고, 범법행위로 유죄를 받은 경우 징계해고를 한다는 회사 규칙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윤씨는 해고는 지나치다고 주장했고, 중앙노동위는 윤씨 주장을 받아들여 복직을 명령했다. 이에 회사가 불복해 소송을 냈다.
회사는 재판에서 “윤씨의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의 대외신용도가 훼손돼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그동안 성범죄 유죄 판결을 받은 근로자를 해고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죄 판결로 윤씨와 회사의 고용관계가 사회 통념상 계속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회사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도 추상적 주장일 뿐 구체적으로 회사에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다른 직원들은 대부분 윤씨의 범죄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히려 회사가 그동안 성범죄 유죄 판결 근로자를 일관되게 해고 또는 의원사직하도록 한 행위 가운데 부당해고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해고 방침이 자칫 사적 영역에서 범죄에 대한 형벌을 부과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밝혔다. 재판부는 “윤씨 처벌은 독점적인 형벌권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실현돼야 한다. 그밖에 사적인 영역에서 사인이 이와 같은 범죄를 이유로 윤씨에게 직접 사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회사가 윤씨와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윤씨의 행위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