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창을 통해 본 강정구 교수의 강의하는 모습.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이것으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아닌데… 혹시 알아요?”
“선생님! 아닐 거예요. 힘내세요.”
“저도 마지막이 아니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12일 오후 희미한 가을햇살이 창가로 내리 쬐는 동국대학교 동국관 306호 강의실. 흰 머리에 깡마른 교수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학생들을 향해 수업을 마친 뒤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의 수업이다. 강 교수는 최근 “맥아더는 원수” “6·25는 통일전쟁” 등의 글로 구속위기에 몰려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상태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맡겨 “가급적 빨리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강 교수는 검찰에 불려 다니거나 구속될 수 있으니, 이날 수업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강정구 교수의 <비교사회학> 9번째 강의시간 이런 탓인지 수업은 진지하면서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수업은 3·4학년 전공선택인 ‘비교사회학’의 9번째 강의시간이다. 커리큘럼이 다양하지 않아 사회학과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하려면 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 강의실에는 30여 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다. “‘반시장경제적’인 교수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 기업 채용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김상렬 대한상공회의소(상의) 상근부회장의 발언과 무관하게, 학생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강 교수는 왼 손을 탁자에 기댄 채 부지런히 오른 손을 흔들어가며 낮은 목소리로 강의를 했고, 학생들은 경청하였다. 유난히 조용한 것을 빼면 평범한 대학 강의실의 풍경이었다. 비교사회학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서로 다른 사회와 제도를 대상으로 사회구조의 차이점과 다른 점, 특징 등을 비교·분석하는 사회학의 갈래 학문이다. 이날 강의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왜 다른 시기와 방법으로 자본주의로 이행했는지, 남한과 북한, 필리핀의 농지개혁에 대한 비교연구 따위가 주제로 오르내렸다. 강 교수는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며 학생들에게 사회학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동아일보, 내 논문에 각주로 참조인용한 것을 주요주장으로 확대 보도” 조용하던 강의실에 약간의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남한과 북한, 필리핀의 농지개혁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농지개혁을 언급한 내 논문 가운데 최근 <동아일보>가 ‘미군정 때 77%가 공산주의 지지’ 라고 보도한 부분이 담겨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1일 강 교수가 서울대 문화관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주최로 열린 한반도 정세토론회에서 “미군정 당시 공산·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어야 한다고 주장해 또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강 교수가 “1946년 미 군정청의 여론조사에서 공산·사회주의 지지는 77%, 자본주의 지지는 14%였다”며 “당시의 조선 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그 체제를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강 교수는 “문제의 발언은 내가 논문 각주에서 짧게 처리한 것을, 마치 내가 단순히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동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논문의 핵심내용이라며 강의를 이어간다. “내가 논문에서 주장한 것은 ‘공산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반도 상황이 사회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분석이었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었다. 왜 그랬나? ①당시는 90% 이상의 재산이 국가의 소유였다. ②식민지 당시의 지배계급이 몰락했으며 피지배계급은 계급역량이 고양되었다. ③지배계급은 정통성이 없었고 헤게모니 장악에 실패해 정치적 지배나 군대를 동원할 능력이 없었다. ④독립운동의 헤게모니는 우파가 아니라 좌파에 있었고, 노동운동·농민운동은 독립운동의 경험으로 적색 노동·농민운동의 역량이 최고조였다. 그들은 지배계급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 역량이 충분하였다. ⑤조선총독부도 좌익인 건국준비위원회에 정권을 이양하였다. ⑥1945년 4월 ‘미군정정세보고서’에 조선은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쉬운 경제적 조건이라며, 조선사회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⑦당시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좋아하는 체제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70%를 넘었다. ⑧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 초대 헌법에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내 논문은 이런 것을 종합해서 볼 때 해방공간에서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사회주의가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내 논문은 학문적 신념에 기초해 해방공간의 남한사회를 분석한 것이다.” 강 교수 “내 필화사건 계기로 사상의 자유로 활기넘치는 나라 되었으면…” 차분했던 강 교수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학생들은 필기를 멈춘 채 강 교수를 빤히 쳐다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수업으로 돌아온다.
강 교수는 “비교사회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러 사회와 제도 등을 살펴본 뒤 이를 어떻게 한국사회와 결부시켜 비교연구로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실천적 방법을 탐구할 것인가”라며 “마지막 수업이 될지라도 대신 수업할 교수님하고 잘 마무리하기 바란다”고 수업을 마쳤다. 강 교수가 강의용 책과 인쇄물을 정리하는 동안 강의실 뒤편에 있던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강 교수는 기자에게 “왜 내 강의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지 서글프다”면서도 “6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냉전적 사고가 깨어져나가는 마지막 진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차라리 이번 계기로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생산적 논의로 180도 바뀌었으면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교수는 “나의 ‘필화사건’이 국보법을 폐지하고 학문과 양심의 자유가 넘치는 활기 넘치는 사회로 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학생들 4~5명은 강의가 끝난 뒤에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수강학생들 “성폭력교수 해임 건의했을 때는 ‘권한 밖’이라던 재단”
수강학생들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업이 끝난 뒤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강 교수에 대한 처벌은 “학문에 대한 테러이자 학습권 침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비교사회학과 1학년을 대상으로 전공과목인 <한국사회론>도 강의한다.
사회학과 학생회장 최성화(3학년)씨는 “강 교수 발언이 논란을 빚으면서 한국사회론을 들으려는 청강생이 늘어나 강의실을 옮기는 것을 고민할 정도”라며 “솔직하게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가르치는 교수님은 인기강사”라고 말했다.
최씨는 “5년 전부터 성폭력 교수의 해임을 학생들이 건의했을 때는 ‘권한 밖’이라고 말하던 재단이 어떻게 강 교수의 해임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재단이 강 교수를 해임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의 의사를 무시한 이중삼중의 학습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규성(사회4)씨는 “강 교수 뿐 아니라 해방전후사 강의를 하는 다른 강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며 “학문적 입장에서 한 이야기에 학문적 논쟁을 해야지, 왜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색깔을 씌워 학문에 대한 테러를 하려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씨는 “사회학을 공부하다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도 있고, 사회주의적 관점도 있는 것 아니냐”며 “학자에게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해줘야 여러 사상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장이 전화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해 아르바이트 잘렸다”
강의실에서 나와 발길을 교정으로 돌리자, 곳곳에 정장 차림의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취업철이다. 김상렬 상의 부회장 발언과 <조선일보>에 “강 교수를 면직하고 싶다”고 밝혔던 재단 이사장 현해 스님 등의 발언 등으로 동국대에 여론이 쏠리면서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을까? 그들은 강 교수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며 작은 컴퓨터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박혜경(4학년)씨는 “사장이 이유도 없이 전화로 ‘너도 강 교수 수업 듣지.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잘렸다”며 “취업 면접을 본 친구들도 면접관이 ‘강 교수 수업을 들었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캐물어 ‘곤란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고 말했다. 강 교수 사건이 학생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강 교수 문제를 바라보는 박씨의 태도는 “어이없다”는 것이다.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니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있고, 강 교수의 학문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잖아요. 학문적 입장에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된다고 선택적으로 처벌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어이없어요. 그럼 학생들의 과제물도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하나요. 우리 나라 여전히 너무 후졌어요.”
“학교 이미지 실추 싫고, 강교수에 동의 않지만, 학자의 양심은 소중”
취업 걱정과 큰 관계가 없는 새내기들도 “처벌은 안된다”는 반응이다. 김지수(경영학부1)씨는 “강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도 않고, 강 교수 말 때문에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 싫다”면서도 “학자의 주장에 학문적 논쟁을 해야지, 국가권력이 학자의 양심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최원기(사회과학부1)씨는 “강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지만, 학자로서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 주장”이라며 “사문화되어가는 국가보안법으로 국가권력이 학문의 자유와 학자의 양심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차경윤(정외과4)씨는 “학자가 소신을 밝힌 것을 사법처리한다는 것은 한 학자의 인생을 말살하려는 것”이라며 “검찰이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소환조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김상렬 상의 부회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우익적 성향의 학생들도 강 교수의 수업을 듣고, 수업을 듣는다고 모든 학생들이 강 교수에 동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분법적 흑백논리”라며 “동국대에 대한 모독”이라고 흥분했다.
강 교수의 발언을 확대 보도한 언론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윤희(국문3)씨는 “강 교수의 말 하나에 동국대를 여론재판에 올려놓은 것은 언론이 동국대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은 물론 상의 부회장 등에게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곁에 있던 길지혜(국문3)씨도 “강 교수 주장의 동의 여부를 떠나 학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른 그의 생각을 존중한다”며 “언론이 학생과 동국대를 매도하는 것이 불만이며, 언론이 진실만을 말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동국대 사회학과 학생들은 이날 오후 6시 학생총회를 열어 이사장 현해 스님과 김상렬 상의 부회장의 발언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기로 결의했다. 또 집회와 단식농성, 천막 야외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학생회장 최씨는 “이사장으로부터는 강 교수를 해임시키지 않겠다는 약속과 사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떠올리게 한 동국관 306호 수업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독일군에게 마을을 빼앗겨 프랑스어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프랑스 선생님은 독일군의 점령 나팔소리가 들릴 때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쓴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온전치 못한 한국사회에서 동국관 306호 강의실에는 모국어 대신 학문의 자유를 잃어버린 선생과 학생들의 `마지막 수업'의 비극이 재현되고 있었다.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작성하는 12일 저녁, 텔레비전에서는 [속보]로 “법무부장관, 강 교수 불구속 수사 지시” 기사를 전하고 있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김미영 기자 pjc@hani.co.kr
“선생님! 아닐 거예요. 힘내세요.”
“저도 마지막이 아니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12일 오후 희미한 가을햇살이 창가로 내리 쬐는 동국대학교 동국관 306호 강의실. 흰 머리에 깡마른 교수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학생들을 향해 수업을 마친 뒤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의 수업이다. 강 교수는 최근 “맥아더는 원수” “6·25는 통일전쟁” 등의 글로 구속위기에 몰려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상태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맡겨 “가급적 빨리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강 교수는 검찰에 불려 다니거나 구속될 수 있으니, 이날 수업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강정구 교수의 <비교사회학> 9번째 강의시간 이런 탓인지 수업은 진지하면서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수업은 3·4학년 전공선택인 ‘비교사회학’의 9번째 강의시간이다. 커리큘럼이 다양하지 않아 사회학과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하려면 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 강의실에는 30여 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다. “‘반시장경제적’인 교수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 기업 채용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김상렬 대한상공회의소(상의) 상근부회장의 발언과 무관하게, 학생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강 교수는 왼 손을 탁자에 기댄 채 부지런히 오른 손을 흔들어가며 낮은 목소리로 강의를 했고, 학생들은 경청하였다. 유난히 조용한 것을 빼면 평범한 대학 강의실의 풍경이었다. 비교사회학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서로 다른 사회와 제도를 대상으로 사회구조의 차이점과 다른 점, 특징 등을 비교·분석하는 사회학의 갈래 학문이다. 이날 강의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왜 다른 시기와 방법으로 자본주의로 이행했는지, 남한과 북한, 필리핀의 농지개혁에 대한 비교연구 따위가 주제로 오르내렸다. 강 교수는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며 학생들에게 사회학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동아일보, 내 논문에 각주로 참조인용한 것을 주요주장으로 확대 보도” 조용하던 강의실에 약간의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남한과 북한, 필리핀의 농지개혁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농지개혁을 언급한 내 논문 가운데 최근 <동아일보>가 ‘미군정 때 77%가 공산주의 지지’ 라고 보도한 부분이 담겨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1일 강 교수가 서울대 문화관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주최로 열린 한반도 정세토론회에서 “미군정 당시 공산·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어야 한다고 주장해 또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강 교수가 “1946년 미 군정청의 여론조사에서 공산·사회주의 지지는 77%, 자본주의 지지는 14%였다”며 “당시의 조선 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그 체제를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강 교수는 “문제의 발언은 내가 논문 각주에서 짧게 처리한 것을, 마치 내가 단순히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동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논문의 핵심내용이라며 강의를 이어간다. “내가 논문에서 주장한 것은 ‘공산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반도 상황이 사회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분석이었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었다. 왜 그랬나? ①당시는 90% 이상의 재산이 국가의 소유였다. ②식민지 당시의 지배계급이 몰락했으며 피지배계급은 계급역량이 고양되었다. ③지배계급은 정통성이 없었고 헤게모니 장악에 실패해 정치적 지배나 군대를 동원할 능력이 없었다. ④독립운동의 헤게모니는 우파가 아니라 좌파에 있었고, 노동운동·농민운동은 독립운동의 경험으로 적색 노동·농민운동의 역량이 최고조였다. 그들은 지배계급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 역량이 충분하였다. ⑤조선총독부도 좌익인 건국준비위원회에 정권을 이양하였다. ⑥1945년 4월 ‘미군정정세보고서’에 조선은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쉬운 경제적 조건이라며, 조선사회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⑦당시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좋아하는 체제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70%를 넘었다. ⑧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 초대 헌법에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내 논문은 이런 것을 종합해서 볼 때 해방공간에서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사회주의가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내 논문은 학문적 신념에 기초해 해방공간의 남한사회를 분석한 것이다.” 강 교수 “내 필화사건 계기로 사상의 자유로 활기넘치는 나라 되었으면…” 차분했던 강 교수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학생들은 필기를 멈춘 채 강 교수를 빤히 쳐다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수업으로 돌아온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강정구 교수. 강의실 입구에 강교수 내용을 다룬 만평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동국대 사회대 건물 입구에 붙은 학생들의 강정구 교수 응원글.“ 선생님, 세상은 자꾸만 변해가는데 사람은 왜 변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 개강후 첫 수업에서 교수님의 당당하신 모습을 보고…” 등의 글 수십개가 써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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