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영선 북콘서트’ 게스트로 출연해 발언
“사자도 다 잡아먹으면 자기가 굶어죽는다”
“사자도 다 잡아먹으면 자기가 굶어죽는다”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북콘서트에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최근 <누가 지도자인가>를 출간한 박 의원은 지난 8월 대전에서 안철수 의원과 북콘서트를 연 데 이어 이날 두번째로 연 북콘서트에 안 지사를 초청했다. 박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전당대회를 주장하며 현재 문재인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때문에 문 대표와 같은 뿌리로부터 출발한 ‘정통 친노’인 안 지사가 박 의원의 초청에 응한 것은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사회자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안 지사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신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회상하시냐”고 운을 떼자, 안 지사는 “반듯하고 따뜻한 분이셨는데 격정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방법에 대해 ‘정의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로 대신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돼 감옥에 있을 때 2004년 탤런트 김혜자씨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이 나왔다는 걸 라디오에서 들었다. 그때 나는 ‘꽃’을 ‘정의’로 들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폭력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까지 불의한 사람들, 압제자, 침략자에 맞서다보니 진보 진영 사람들도 더 세게 나가려고 했는데 그러고선 우리들이 좋은 사회 못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안 지사는 노 전 대통령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억에 대해 시간을 더 할애했다. 그는 “디제이(DJ)의 연설문을 늘 봐왔다”며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끝나고 식사를 함께 했는데, 왜 모든 연설문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엔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미처 못 물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지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아직은 쓰지 못하고 있다”며 “내가 만져볼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지도자다움이 역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 현안으로 본격 들어서자, 안 지사는 싱거운 ‘우회 전술’로 대응했다. 어떻게 하면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이길 수 있냐고 묻자 곁에 앉은 박 의원을 쳐다보며 “박 의원을 중심으로 하면 똘똘 뭉치면 이길 수 있다”고 답했다. 그뒤 “그런데 모든 존재가 세계의 중심이다. 옆 사람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20세기가 보스 중심이라면 21세기엔 정치적 동지들과 시민들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통합전대론에 대해서도 “도지사로서 걱정이 많아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답을 꺼렸다.
박 의원이 “이제 정치에 새물결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장점을 묶어서 하나의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드는 원동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안 의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박 의원이 주장하는 ‘새물결’이 새정치연합 내에서의 세력 교체를 의미하는 것과 달리, 안 지사는 메르스 사태 때 행정가로서 겪었던 어려움을 얘기하며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분법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달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보며 정치하는 흐름을 만들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안 지사의 한 측근은 “안 지사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현 지도부를 흔드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가령 통합전당대회론처럼 총선을 앞두고 흩어진 야권 세력이 합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자는 주장에 대해선 응원하고 있기 때문에 콘서트에 출연해달라는 박 의원의 요청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특유의 ‘은근 화법’으로 뼈있는 비판을 던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물의 왕국>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도 그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박 대통령이 <동물의 왕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동물은 배신을 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자연 생태계는 협력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본다. 사자도 (다른 동물들을) 다 잡아먹으면 자기가 굶어죽으니까 (다른 동물들과) 협력하고 의지하지 않나. 박 대통령이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배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게 안타깝다. 그분도 대한민국 사는 사람 아닌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누구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좋겠다.”
한편, 이날 북콘서트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을 비롯해 김기준·김영록·남인순·박홍근·민병두·한정애 등 동료 의원들이 참석했다. 박 의원은 다음달 4일엔 대구에서 김부겸 전 의원을 게스트로 초청해 세번째 북콘서트를 연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