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성 불러 손발묶고 성관계’ 혐의
여성 “합의 성관계”…남편 “살려고 응해”
영장발부 법원, 성폭행 적극판단 회피
여성 “합의 성관계”…남편 “살려고 응해”
영장발부 법원, 성폭행 적극판단 회피
남편을 성폭행한 아내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아내가 남편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는 첫 사례가 나와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덕길)는 남편의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은 뒤 이틀 동안 가둬놓고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감금치상·강요·강간)로 심아무개(40)씨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심씨는 남편 ㄱ씨와 영국에서 10여년을 함께 살다 올해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ㄱ씨는 심씨가 유학생을 상대로 사기를 벌여 영국과 한국에서 처벌받은 것 등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심씨는 이혼과 관련한 협의를 하자며 지난 5월 ㄱ씨를 서울의 한 오피스텔로 불러냈다. 이어 남편의 옷을 벗기고 몸을 묶어놓은 채 ‘이혼은 남편의 책임’이라는 취지의 말을 받아내 녹음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ㄱ씨를 제압해 몸을 묶는 과정에는 제3의 남성(43)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쟁점은 심씨의 성폭행 범죄 성립 여부다. 심씨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윤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밤 “감금치상 및 강요 범행의 동기와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심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심씨가 남편을 오피스텔에 가두고(감금치상) 이혼 책임을 인정하는 말을 강요한 혐의(강요)는 인정했지만, 성폭행 혐의(강간)에 대해서는 적극적 판단을 피한 것이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김태의 변호사는 “이혼 소송 중 아내가 남편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성폭행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공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이 성폭행 사건의 주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 이번이 두번째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철희)는 지난 4월 내연남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강간미수)로 전아무개(45)씨를 구속 기소했다. 전씨는 지난해 7월 유부남인 ㄴ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수면유도제를 먹인 뒤 몸을 묶어놓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강간죄 피해 대상이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된 2013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여성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진 사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전씨는 지난 8월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에서는 전씨와 ㄴ씨에게서 함께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돼 일방적으로 약을 먹여 성폭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이 쟁점이 됐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전씨의 경우 정신이상이 있어 진술이 오락가락했지만 심씨는 그런 사정이 없다. 또 심씨의 성폭행 정황이 뚜렷해 범죄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부부 사이라는 점은 변수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이 2013년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도 부부 사이의 성폭행 범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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